저의 친구 한 놈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24년 전인 1991년에 세상을 떠난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친구인데 남들은 취미로 다이빙을 했지만 이 친구는 먹고 살기 위해 다이빙을 했던 친구입니다. 저는 이 친구 덕분에 싱싱한 해산물을 늘 푸지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전복을 따가지고 오고, 어느 날은 큼지막한 키조개를 따가지고 오고, 어느 날은 1미터나 되는 농어를 잡아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안주를 가져온 날은 친구들 몇 명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앉아 함께 소주를 마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면 이 친구는 늘 노래 한곡을 했는데 그 노래가 바로 전인권씨의 ‘사노라면’이었습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런 노래였지요.

이 친구가 부르는 이 노래를 우리는 수십 번도 더 들었습니다.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이제 그만 부르라고 핀잔을 줄 법도 한데 우리 친구들 중 누구도 이 노래를 그만 부르라고 제지하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때 우리의 삶이 이 친구처럼 모두 그러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장남으로 태어나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내 친구는 어린 동생들의 학비까지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늘 객지로 가고 싶어 했는데 객지로 나가지도 못하고 어머니 곁을 지켜야 했던 친구였습니다. 산다는 것이 힘들었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힘이 들 때마다 친구는 이 노래를 불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 친구는 비록 고달픈 삶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이 고생을 면할 날이 올 것이라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이 친구는 수심이 얕은 물에서는 돈 되는 해산물이 얼마 없다면서 점점 수심이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깊은 물속을 다녀온 날에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돈이 되는 해산물을 많이 잡았다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친구가 자꾸 물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몹시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말릴 수 있는 형편도 안 되어서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했는데 결국 찬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날에 친구의 비보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는 화장장에 가면 유골을 화장한 뒤에 마지막 남은 유골을 유가족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유골과 함께 절구 같은 도구도 함께 주면서 유골을 가루로 잘게 부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친구의 유골을 양 다리에 끼고서 하얀 가루가 될 때까지 내리찧었습니다. “나쁜 새끼! 나쁜 새끼”하면서요. 그렇게 가루로 변한 친구를 바다에 뿌려주면서 우리 친구들은 울먹이면서 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그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면서 친구의 인생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살다보면 밝은 날도 온다고. 힘들고 괴로운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날이 새면 다시 해가 뜨지 않더냐고. 젊다는 게 뭔데? 젊은 놈이 쩨쩨하게 살지 말자고. 쪽팔리거나 비굴하게 살지는 말자고 수도 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껏 살면서 쩨쩨하게 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부대끼며 사는 세상에는 ‘고통량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고통의 총량은 같다는 이론입니다.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잘 사는 놈이나, 못 사는 놈이나 고통을 겪는 량은 같다는 이론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론이 사람이 일생 동안 흘리는 땀과 눈물의 총량도 같고, 사람이 마시는 술의 총량도 같다는 이론입니다.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눈물을 적게 흘리고, 땀을 적게 흘린 사람은 눈물을 많이 흘린다는 의미입니다. 술도 마찬가지고요. 평생 마시는 술의 량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자산규모 5위인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불행한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이 말이 결코 틀린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소득이 높고 직위가 높으면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선진국에서는 고소득이나 높은 출세가 행복에 기여하는 정도가 점점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정서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경향이 우리보다는 훨씬 덜하다고 합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면서도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그 후보직을 사퇴한다든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귀영화를 버리고 은퇴를 한다든지, 지금껏 번 돈 중에서 극히 일부만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든지, 하는 사람이 그곳에 많은 까닭입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고, 더 높이 올라가려는 욕망이 덜하다는 의미입니다. 얼마 전에 모 방송국에서 폐지를 팔아 하루를 살아가는 할머니에 대한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낡은 수레를 끌고 폐지를 주워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하루 종일 설탕물 한 그릇을 마시는 것이 먹는 것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나라 높으신 분들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발버둥치는 그 노력의 반의 반의 반만큼만 어려운 분들을 위해 노력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을 했습니다.

수십 조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자신이 가진 돈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만큼만 사회에 내놓으면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대한민국이 지금 이렇게 각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 지금보다 더 가지겠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팔을 비틀어 그 사람들이 가진 것을 뺏어가는 모양새도 그렇고, 올라갈 만큼 올라간 사람이 더 높이 올라가겠다고 온갖 추잡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인간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이, 높은 사람이, 조금 더 인간다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우리도 먹고는 사니 그러한 사람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부터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하루하루가 폭염에 가까운 날씨입니다. 더위에 늘 건강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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