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매일
교육책 읽는 도시 여수
“헌책방은 추억과 잊힌 꿈을 끄집어내는 곳”22만권의 삶이 숨쉬는 여수 형설서점 조화익 주인장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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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4  15: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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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자 헌책 특유의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그런데 냄새보다도 시야를 가득 채운 책더미가 주는 광경이 먼저 시선부터 압도했다. 마치 책으로 가득한 숲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겨우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남기고는 모든 공간에 책이 가득했다. 2·3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통로마다 책이 켜켜이 쌓였다. 이 공간의 모든 시간은 책과 음악이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여수 ‘형설서점’ 주인장 조화익(54) 씨에게 책은 모든 것을 시작하는 ‘뿌리’와도 같았다. 책을 통해 모든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간다. 책아일체(冊我一體)이다.

3층 건물에는 22만권의 책에 담긴 인생이 꽉꽉 들어차 있다. 1층의 책들은 판매, 2·3층은 대부분 소장용이다.

“한 권 밖에 없는 초판본이나 희귀본일지라도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책을 내어 준다. 재물을 탐하면 추해 보이지만 책이 좋아 책을 탐하는 건 아름답지 않나.”

   
여수 형설서점

조 씨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부터 어머니와 함께 서점을 운영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장남으로서 동생들의 뒷바라지도 해야 했지만 배움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공부까지 마쳤다. 하지만 1998년 IMF 외환위기가 오면서 다니던 회사를 나와야 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마음속에 담아두고만 있던 터였다. 고민 끝에 남원에 헌책방을 차렸으나 여의치 않았다. 결국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친인척이 있는 여수였다.

“2000년 헌책방을 시작할 즈음 여수에는 헌책방이 한 곳 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문을 닫았다. 헌책방은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30만 명이 사는 도시에 헌책방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럭저럭 먹고는 살았다. 하지만 3년여 전부터 경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여가방식 변화에 따른 독서인구 감소 추세도 한 원인이었지만 교과서 개정 주기가 짧아진 탓에 중·고교 참고서 매출이 수익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헌책방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임대료, 운영비, 전기세 등을 합하면 한 달에 들어가는 고정 비용만 200여만원이 넘는다. 아끼고 줄인 최소한의 비용이지만 헌책방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한때나마 책방을 닫을까도 했지만 이 일이 사명이고 업이라 여기며 버텼다.

그래도 좋은 책 확보에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2013년 8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구입한 책이 2200만원어치에 이른다. 그러나 재정상 한계에 다다르면서 책 구입은 잠시 보류한 상태이다.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봤다. 책 중독일까. 자신도 모르게 헌책 구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또 검색하고 책을 훑는다. 초판본이나 희귀본 등 처음 본 책은 욕심이 난다. 그냥 책이 좋다. 책이 있어야 사는 것 같다.”

   
형설서점의 주인 조화익 씨.

시대적 흐름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새책방들도 어려워 문을 닫는 판국에 헌책방은 오죽할까. 인터넷 서점에선 살 수 없는 인생과 추억을 파는 동네 책방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책방 없는 동네가 많아질수록 사람 냄새 나는 동네는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책 가격에 인건비가 포함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용접 등의 특정 기술을 익혔다고 치자. 일당 15만 원 이상은 받을 수 있다. 여수에서만 책방 운영을 15년 했으니 그 정도의 대우는 받아야 하지 않나. 그게 안 된다”

최근 서점의 어려움을 알게 된 주위 분들이 십시일반 도우면서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가고 있다. 여수 유일의 헌책방을 살리고자 후원을 위한 작은 문화예술 행사 등이 열리고 있다. 주위 분들이 책방을 살리려고 나서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책방을 깔끔하게 재정리하면서 약 5톤가량의 책을 솎아 내기도 했다.

헌책방을 ‘길이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조 씨는 사람들의 지혜와 온기를 담고 있는 헌책방이 여수에 꼭 있어야 한다며 애용을 당부했다.

“인터넷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해 놓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 중에는 좋은 책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은 책 관리가 소홀한 편이다. 우리 서점의 모든 책은 내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

   
 
그러면서 오늘 발견했다며 책 한권을 불쑥 내밀었다. <이한열, 유월 하늘의 함성이여> 이한열추모사업회 엮음. 1989년 8월 학민사가 펴냈다.

책에는 “너무도 안타깝게 쓸쓸한 기념회장. 한열이가 무엇일까? 돌아가신지 2년도 안되어 잊혀져버리는 그런 슬픔과 분노가 아닌데. 무기력과 무관심 기만과 허위와 우리들의 비겁을 일깨운 너무나 아까운 너무도 애통한 이름인데…. 자꾸만 눈물이 난다. …중략… 제 각각의 목소리로 하나의 ‘빛’ 만들어 내는 장엄한 합창 교향곡이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 책은 이 열사의 추모문집으로, 추모 2주기를 맞아 출판 기념회장에 참석해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전두환 군사정권 규탄 시위에서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7월 5일 병원에서 목숨을 잃은 연세대 학생이다. 이 열사의 죽음은 그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과거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만화책의 경우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린 시절 만화책에 대한 추억이 없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친구들과 만화책을 보면서 즐겁게 웃고 떠들고 책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장면들이 모든 사람들이 기억 한편에 존재한다. 추억의 캔디 캔디, 보물섬, 로봇 태권V, 검정고무신, 머털도사, 슬램덩크 등은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마니아들 때문에 특정 만화책의 가격은 높게 형성돼 있다고 귀띔했다.

   
이한열 열사 추모 2주기를 맞아 추모문집 출판 기념회장에서 한 참석자가 기록한 내용.

시민들이 좀 더 많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것이 책방 주인장의 바람이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28.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10명 중 3명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는 것.

“여수시민 또한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예전부터 바닷가 도시는 서점이 안 된다는 속설이 있다. 인정한다. 부산이나 인천도 바닷가 도시지만 모든 면에서 규모가 다르다. 대학 수만 봐도 이들 도시가 훨씬 많다.”

여수시가 정책적으로 동네서점이나 헌책방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관광도시라지만 먹고 노는 꺼리들만 생겨나고 있어 가끔은 여수가 영혼이 없는 도시처럼 느껴진단다.

“헌책은 단순히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누가 읽다 만 책이 아니다. 헌책방은 구할 수 없는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읽고 싶은 책, 잊힌 꿈을 끄집어내는 곳이다. SNS와 모바일 등의 발달로 디지털이 대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중요시한다. 원하는 책을 사기 위해 가는 새책방과 달리, 헌책방은 ‘어떤 책을 만날까’라는 궁금한 마음이 앞선다. 헌책방은 과거 추억과 교감하는 곳이다.”

주인장에게는 오랜 꿈이 있다. 책밭과 다(茶)밭, 골동품(또는 민속품), 그리고 지역 작가들이 소규모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꾸리는 것이다. 책방의 주인은 책이라는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형설서점 주인 조화익 씨.

형설서점 위치 : 여수시 동문로 36(고소동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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