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서지난 주 신문이 나간 이후 본의 아니게 우리 신문이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전화에서 “지금까지 당신 신문을 보면서 처음으로 칭찬해 주고 싶어 전화 한다” 거나 “여러 사람들에게 동부매일을 보라고 얘기하고 다닌다”는 격려의 전화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적잖은 논란이 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주에는 시와 의회를 비롯한 몇 개의 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요구할 예정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민감한 사안들이다. 이것도 결과에 따라서 지역에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사회가 투명하려면 비밀이 없어야 한다. 닫힌 문 안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문 밖의 사람은 알 수 없다. 지금껏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그 안의 탁해진 공기를 밖의 맑은 공기로 순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신문의 역할이다.

우리 신문은 여러 개의 제목을 가지고 백화점 식으로 풀어 놓는 것 보다는 시민들에게 유익한 핵심적인 몇 개의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머지 소식들은 여타 인터넷 뉴스를 보면 자세히 나와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면 된다.

시를 비판하거나 시의회를 비판하는 일은 그리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일은 아니다.누군가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YES'라고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NO'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야 이 사회가 투명해 진다고 믿는다.

우리가 글을 쓸 때 본인이 ‘시(詩)’라고 한다면 모든 게 ‘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시’라고 불려지기까지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대체적으로 공감해야 그것이‘시’가 되는 것이다.

지역 일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시(詩)’라고 한다고 해서 모두가‘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이 ‘그것은 시가 아니라 독백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시가 아닌 독백’이 되는 것이다.

전번 신문을 보고 시 관계자가 신문에 나온 자료에 대해서 ‘그 근거를 대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답은 ‘정식으로 요구하면 신문 지면을 통해서 그에 대한 답을 하겠다’ 고 답변하였다.

내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말을 할 것이고, 그 자료에 더해서 아직 공개하지 않은 자료가 있으면 지면을 통해서 더 내보내겠다는 뜻이다. 나에게 자료를 보내주는 수많은 정보원에 대해서는 밝힐 수가 없다.

신문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신뢰가 무너지는 날, 이 신문사는 내 스스로 문을 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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