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미친 남자 박근세 사진작가

▲ 박근세 사진작가

“섬은 내 영혼의 안식처”

“섬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힐링(치유)이 된다. 무엇보다 섬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날 기다려 줄 것이다. 내 영혼의 안식처이다.”

여기 섬에 미친 이가 있다. 30년 넘게 묵묵히 찍어낸 사진 20만장이 모여 여수의 섬, 더 나아가 우리나라 섬의 기록이 되고 있다. 이젠 그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섬의 기억도 흔적으로 남아 한 사람의 삶을 보듬는 따뜻한 추억이 되고 있다.

지난해 GS칼텍스 여수공장을 퇴직한 박근세(60) 사진작가의 사진사랑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 한때 교동 오거리에서 ‘본카메라’라는 사진관을 직접 운영했고, 회사 내 사진동호회도 만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쉬는 날 틈틈이 전국의 섬을 돌아다녔다. 신안~목포~여수~통영~거제~인천~울릉도 등 국내에서 박 작가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섬은 거의 없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 (사)여수지역발전협의회 ‘여수365 생일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여수의 365개 섬을 모두 촬영하는 대장정에 나선 박 작가는 아직 촬영하지 못한 10개 섬은 올 봄 안에 완성할 계획이다.

그 결과물로 지난 1월에는 ‘아름다운 여수 365섬’ 사진전을 갖기도 했다. 사진전에서는 박 작가가 지난 2005년부터 여수의 365개 섬을 찾아 촬영한 것들 중 40여 점과 지금까지 촬영한 355개 섬 사진 전체를 영상 모니터를 통해 선보였다.

섬 정보 부족해 접근성 여전히 취약

365개 섬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섬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됐다.

박 작가는 “섬에 살고 있는 주민 수나 섬 소개 등의 기본적인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섬에 대한 정보 접근성은 취약하다. 여수 365개의 섬에 대한 모든 정보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오도를 예로 들면서 “금오도 하면 대부분 비렁길을 떠올린다. 금오도의 역사, 마을 유래, 문화, 민속 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섬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홍보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제 어느 때고 섬을 촬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양면의 섬은 갯벌을 강조해 촬영을 해야 하는 섬이 있다. 간조와 만조 때 섬 사진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물때를 맞춰야 한다. 여객선이 없는 섬은 개인 비용을 들여 배를 빌려 들어가기도 하고, 100번 넘게 간 섬도 있다. 금오도는 매주 한 번씩 3년째 다니고 있다.

▲ 박근세 사진작가
기억에 남는 일화도 소개했다. “여름철 소거문도에 1박2일 일정으로 처음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민박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뱃머리의 좁은 대기실에서 잘 수밖에 없었는데 모기에 뜯기며 고생한 적이 있다. ‘섬을 계속 다녀야 하나’ 하는 회의도 잠시 들기도 했지만 그 섬에 애착이 생겼다. 한 번 더 방문할 계획이다.”

“1981년도로 기억하는데 당시는 백도에서 낚시가 가능했다. 사진 촬영과 낚시를 겸해 갔는데 배가 고장이 나 조난 아닌 조난을 당한 적이 있다. 그날이 백도에 처음으로 들어간 날이었는데 백도에 갇혀 며칠을 옴짝달싹 못할 때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외부에서 바라본 섬을 주로 담았다면 이제부터는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을 계획이다.

박 작가는 “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 섬에 사는 주민들의 삶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다. 혼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여수 365개 섬 중 어르신 1~2명 거주하는 섬은 5곳인데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그 섬은 무인도가 된다. 이 분들이 살아있는 동안 기록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벗이 적은 섬의 어르신들은 말을 걸면 무척 좋아하신다며 어르신들 말을 육성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섬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섬을 알리고 싶다는 박 작가는 여수의 미래 먹거리는 섬과 바다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섬이 가장 많은 지자체는 신안이다. 실제 섬은 880개(유인도 91, 무인도 789)이지만 쉽게 알리기 위해 천사(1004)의 섬으로 상징화했다. 네임 밸류(name value)를 만들어 홍보한 것이다.”

섬의 정체성.역사성 중요…개발과 보전 균형 필요

박 작가는 섬도 정체성과 역사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묘도 일대는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27일간 머물렀던 곳으로 조명연합수군의 주둔지이자 노량해전 전적지로서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역사적 의미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전적지다운 모습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도독마을에 주둔했던 명나라 장군 진린 도독으로부터 유래한 마을 안내판과 포토존 등이 있지만 허술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무찌른 포구인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와 비교된다”고 했다.

관음포 앞바다는 1598년 11월 19일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이자 세계 역사상 한·중·일 삼국이 함께 싸운 유일한 해전인 노량해전에 참전했던 중국 명나라 계금(季金) 장군이 싸운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계금 장군의 후손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 박근세 사진작가
손죽도와 거문도도 마찬가지다. 거문도는 1885년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불법 점령했다. 당시 영국 해군성 차관인 ‘해밀턴’의 이름을 따 해밀턴항으로 불렀다. 거문도는 일본 군사시설과 구한말 영국 해군의 점령과 국제전화선 최초 개통 등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국내에서 최초로 테니스·당구가 보급된 곳이기도 하다.

손죽도는 임진왜란 5년 전인 1587년 손죽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구와 맞선 싸우다 전사한 이대원 장군 사당과 화전놀이, 선사문화유적지, 풍부한 생태자원, 빼어난 비경 등 역사와 전통문화가 잘 공존해 있다. 그러나 육지와 멀다는 이유 등으로 역사적 의미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박 작가는 섬과 해안이 많은 여수는 개발과 보전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화태대교 개통 이후 화태도 주민들은 넘쳐나는 쓰레기와 차량들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 그는 “2005년 백야대교 개통 이후 백야도 주민들이 겪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를 반복하는 행정이 아쉽다고 했다.

더욱이 화태대교가 개통하면서 돌산 군내항과 인근 도서지역을 운항하던 뱃길이 한 달여 동안 중단 됐다. 다리 공사는 수년 전부터 진행돼 왔는데 벌어질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것이다.

“전국의 섬을 다니다보니 우리 여수의 섬과 비교가 된다. 제주도 등 극히 일부 섬을 제외하고는 섬의 인구가 줄고 있다. 젊은이들이 먹고 살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섬에 관광객만 불러들일 것이 아니라 섬에서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수는 바다를 낀 해안을 가지고 있어 경관이 중요한데 최근 돌산1·2대교 인근에 숙박시설이 들어서면서 경관을 해치고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들어설 텐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