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거 때만 되면 난 겁이 난다. 이제껏 서민들의 삶과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선거철만 되면 서민을 대표하겠다고 나서는 그 모습에 겁이 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의 권위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겁이 난다.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공평한 것이 행운이라고. 누구는 뼛골 빠지게 일해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별로 하는 일 없이 사는 것 같은데 온갖 행운과 권세를 누리며 사는 사람이 쌔고 쌨다면서. 그런데 이러한 행운도 노력의 산물이라는 말 앞에서는 나도, 그 말을 하는 이도 할 말은 없다.

며칠 전, 귀한 손님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긴히 할 얘기도 있고 어느 정도의 격식을 차려야 하겠기에 조용하고 품위 있는 식당을 고른다는 것이 그만 고급 음식점으로 약속장소를 정하고 말았다.

“지가 비싸봤자 1인분에 2만 원 정도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간 식당은 1인분에 최하 5만원이었다.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백컨대 가끔 나는 이 식당에서 몇 번의 저녁식사를 누군가로부터 대접받은 일이 있다. 그 때는 무심결에 ‘고급스럽게 음식이 참 잘 나온다’는 생각만 했지 1인분에 5만원이나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본의 아니게 1인분에 5만 원짜리 접대를 받아왔던 것이다. 아니, 최하가격이 5만원이니, 내가 6만 원짜리 접대를 받았는지, 7만 원짜리 접대를 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 일행이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받고, 가격표를 확인한 후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해야 했다. 부담이 되더라도 이왕 들어왔으니 그냥 먹어야 하나,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다른 식당으로 가야하나.

그렇지만 나는 초청한 손님에게 창피를 무릅쓰고 양해를 구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우리가 5만 원짜리 밥을 먹는다는 것은 제 생각에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허락하신다면 다른 식당으로 옮겼으면 합니다. 이렇게 비싼 줄 몰랐습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한 끼에 5만 원짜리 밥을 먹는다는 것이 과분한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손님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야 하는 저녁이 아니고 상대가 사는 저녁이라 할지라도 가격표를 안 이상 나는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해줬다. 우리 일행은 옆에 있는 매운탕 집으로 가서 일행 네 명이 5만원으로 부족함이 없는 저녁식사를 했다. 소주까지 곁들여서.

정치인들이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 한 달이면 여러 차례 이러한 고급식당에서 만찬을 벌이는 것으로 안다. 초청만찬이니 밥값도 당연히 초청하는 정치인이 냈을 것이다. 그러한 밥값이 시장 바닥에서 하루를 벌어 하루를 연명하는 서민들의 세금에서 나온 돈이 아니기를 그저 바랄뿐이다.

이제 본격적인 선거판이다. 한 지역을 이끌고자 하는 사람은 서민들의 거친 손을 만지기 이전에 서민들의 가슴속을 먼저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내일을 위해,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질곡의 삶을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

오늘은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춥다. 이 추운 날에도 시장바닥에서 시린 손 부여잡고 사는 사람들을 단순히 얍삽하게 표 하나로 인식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도 하고 싶다.

서민들이 덜 추우려면 정치인을 잘 뽑아야 한다. 그런데 서민들은 어느 정치인 알곡이고, 어느 정치인이 쭉정이 인지를 분간할 수 없다.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선거관행은 그저 이런저런 연고에 의지해서 유권자들은 투표소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항상 후회가 되어 되돌아 왔다.
결국 신문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누가 알곡이고, 누가 쭉정이인지, 누가 든 사람이고, 누가 난 사람인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서민들은 그것을 근거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신문의 특색은 투박하지만 확실한 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우리 신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신문은 계속해서 후보자에게는 정견 발표의 장이 되고, 생업과 생활에 쫓겨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질 형편이 안 되는 유권자들에게는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할 창구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후보자들은 효과적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의 정견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후보자는 행사장을 쫓아 다니거나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접촉을 해야 하는 후진적 선거운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선거운동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는 후보자대로 필요 이상의 선거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결국 선거자금으로 얼마를 사용했느냐에 따라서 당락이 좌우되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 당선된 사람들은 당선이 되자마자 선거운동에 투자한 본전을 뽑아야 했고, 다가올 선거에 필요한 정치자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지역 언론이 정견발표의 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신문은 우리에게 맡겨진 소임에 충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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