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기밀 해제 정보문건에 여순사건 관련 내용 포함
“이승만 정권, 여순사건을 김구 등 정적 제거에 이용”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한국 시각으로 지난달 18일 인터넷 홈페이지 전자 독서실에 내부 기밀문서 93만 건, 1200만 쪽 가량의 기밀해제 문서를 공개한 가운데 CIA는 이승만 정권이 정적을 제거하는 데 여순사건(여수·순천 10·19사건)을 이용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공개된 CIA 문건은 여순사건이 발발한 지 일주일이 지난 1948년 10월 26일 미국 CIA 보고예측국이 본국에 보고한 중요 기밀 문서이다. 여수와 순천, 지리산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와 함께 A4 한 장 정도의 분량으로 여순사건 배경, 전개 과정, 이승만의 대응 등 여순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미 정보기관이 여순사건을 매우 빠른 시기에 파악하고 있었고, 미국이 여순사건 개입과도 깊은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공개한 기밀해제 문서 일부분. 여수·순천·지리산을 여순사건의 주요 발생 지역으로 표기한 지도에는 ‘TO Cheju-do’와 화살표가 제주도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여수 제14연대의 제주도 출동을 의미한 표기로 보인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사건의 진압 명령을 받은 여수 14연대 소속 군인들이 항명하면서 발발한 ‘여순사건’은 당시 전남 동부 일대를 장악한 반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무더기로 희생됐다. 여순사건은 이승만 정권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등 반공체제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은 여순사건 당시 미국 CIA의 분석에서도 예측됐다. 특히 이 문건은 여순사건을 이승만 정권의 권위를 심각하게 위협한 최초의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미 CIA는 여순사건 당시 한국군의 작전 수행 능력이나 무기 등으로는 진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순사건 진압 작전에 미군이 작전 지휘와 무기 공급 등 직접적으로 개입했음을 반증한다. 당시 ‘라이프(LIFE)’지 기자였던 미국 사진기자 칼 마이던스(1907~2004)가 촬영한 사진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여순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권은 언론 통제를 강화하고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이들을 제거할 기회를 잡은 셈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이승만 정권은 여순사건을 김구 등 우익 인사와 공산주의자가 함께 계획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거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빨갱이’ 또는 ‘공산주의’로 매도해 이분법적 이념 프레임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이런 프레임은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병폐가 되고 있다.

여순사건 전문가인 주철희 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여순연구센터장은 “CIA 자료는 이승만 정권의 의도를 미국이 알면서도 방조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남한의 체제를 반공 체제로 구축하려고 이승만을 이용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 사진=LIFE지, 촬영일 1948.10. 사진기자 고(故) 칼 마이던스.
▲ 사진=LIFE지, 촬영일 1948.10. 사진기자 고(故) 칼 마이던스.
CIA는 또, 여순사건의 전개 과정도 보고서에 실었다. 10월 20일 여수에서 국방경비대의 좌익 간부들이 부대원들을 이끌고 경찰을 공격했고, 10월 25일 진압군이 여수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반군을 해산시켰지만, 지리산 일대에 모여든 반군을 완전히 진압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수·순천·지리산을 여순사건의 주요 발생 지역으로 표기한 지도에는 ‘TO Cheju-do’와 화살표가 제주도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여수 제14연대의 제주도 출동을 의미한 표기로 보인다.

그동안 이런 미국 측의 자료는 여순사건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순사건 당시 미국이 우리 정부군의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진압 작전을 지휘했고, 자연히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 문건은 연구에 활용돼 왔었지만,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 문건이 온라인에 처음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철희 여순연구센터장은 “이 문건에서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포로의 진술이나 반군의 이동 경로 같은 기록, 사건에 대한 미국의 논평은 유의미한 자료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 사진=LIFE지, 촬영일 1948.10. 사진기자 고(故) 칼 마이던스.

1940년대에 제작된 여수 지도도 공개돼
일제강점기 때 서정에 이순신 동상 존재

이 문건 외에도 6.25전쟁 당시 여수의 상황을 보여주는 보고서와 1940년대에 만들어진 여수 지도도 공개돼 관련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43년 일제가 제작한 지도를 바탕으로 1945년 5월 미국이 제작한 이 지도는 여수 연안의 수심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주철희 여순연구센터장은 “미국와 연합군이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공습할 것을 상정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45년 8월, 미군기가 남해안에 자주 나타났으며 폭격을 가하기도 했다.

여수 시내의 주요 기관도 모두 표기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이순신 동상이 서정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근현대 여수를 연구하는데 의미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 문건은 미국의 시각에서 작성된 것이어서 한계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CIA는 14연대의 반란이 소련이 목표한 바, 즉 남한에서 북한 공산주의 정권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계획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는 별도의 근거를 들지 않은 추정적인 서술로, 여순사건이 터지자마자 이승만 정권이 언론에 내놓은 주장, 즉 좌익과 김구 등의 우익들이 소련의 10월 혁명 기념일을 계기로 일대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계획한 사건이라는 주장을 소개한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게 지역 학계의 시각이다.

▲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공개한 기밀해제 문서 중 여수 지도. 1943년 일제가 제작한 지도를 바탕으로 1945년 5월 미국이 제작한 이 지도는 여수 연안의 수심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여순사건 진상 규명…특별법 제정 성과 없어

여순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참여정부 때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가 여순사건을 조사해 1237명의 피해자를 확인했지만 신청 사건에 대해서만 조사가 이뤄진데다, 활동 기간과 인력의 한계에 부딪혀 전반적인 피해 사실과 희생 규모를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희생자, 유족뿐 아니라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제주 4.3사건처럼 특별법을 제정해 여순사건의 진상을 재조사하고 희생자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 18, 19대 국회에서 여순사건 특별법이 각각 한 차례씩 발의됐지만 모두 상임위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지난해 출범한 20대 국회에서는 여순사건 관련 특별법이 아직 발의되지 않고 있다. 내년이면 여순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70년이 되지만 명확한 진상 규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주철희 여순연구센터장은 “여순사건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제주4.3사건은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과 평화공원 조성 등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져 역사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며 “여순사건 특별법도 제주4.3사건의 특별법을 준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 또는 변곡점을 제공한 중대한 사건이다. 특별법 제정의 중요한 본질은 이데올로기나 색깔론의 악령에서 벗어나 여순사건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것이다”면서 “우리 지역에서부터 바로 알기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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