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를 읽으며 충무공을 찾아 나서다 9

“여도 만호와 홍양 현감이 와서 백성을 해치는 영리(營吏)들의 폐단을 말했다. 몹시 놀라운 일이었다. 양정언과 영리 강기경, 이득종, 박취 등을 중죄로 다스림과 동시에 전령을 내려 경상도와 전라 우도의 수사에게 영리들을 잡아들이라고 했다.”

병신년(1596년) 2월 26일의 일기다. 전시에 나라를 위해 힘써야할 관리들의 부패를 접한 장군의 엄중함과 한탄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대목이다.

▲ 사충사 유허비. 사충사 유허비는 여수시 시청로 116에 있다. 여천동 내동마을의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자 유허비가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무릎을 꿇고 오래 앉아 있었다. ⓒ김윤식

사충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따라 싸우다가 전사한 정철, 정린, 정춘, 정대수의 충절을 기리기 세워진 사당이다. 1921년 여수시 웅천동에 오충사(五忠祠)란 이름으로 복원되면서, 사충사 터에 세운 비가 사충사 유허비이다.

이들은 비록 여수 지역의 명문가 출신으로 문과에도 급제한 뛰어난 문인들이었으나 임란 발발 이후 스스로 이순신 장군의 막하에 들어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세 분이 전사하신다. 노블레스로서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신 분들이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목숨까지 바친 분들에게, 힘 가진 벼슬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관리들은 어떤 존재로 비쳤을까. “백성을 해치는 영리(營吏)들”을 “중죄로 다스”리신 이순신 장군이 몹시 그립다.

…오늘도 유허비는 그저 쓸쓸하게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다.

여수충무고 학생동아리 ‘이순신연구소’ 박인화, 홍지원, 송서연, 김윤식, 정승화, 서지희. 대표집필 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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