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포해양공원 여수밤바다 낭만포차가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이곳 상인들의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정작 여수지역 야간 포장마차의 원조 격이랄 수 있는 연등천 포장마차 상인들은 폐점 위기에 몰리고 있다.

▲ 지난 9월 9일(토) 오후 10시 40분경 연등천 교통시장 포장마차. ⓒ 마재일 기자


시간과 추억이 저장된 곳…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정서 자극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은 일본 만화와 동명의 TV드라마 <심야식당>에서 이 독특한 주점의 주인장(고바야시 가오루 분)은 “사람들이 하루를 마치고 귀가를 서두를 때 나의 하루 일은 시작된다”고 읊조리며 심야에 가게 문을 연다. 주인장은 무뚝뚝하지만 이곳을 찾는 단골들이 꽤 있다. 주머니가 가벼운 3류 무용수와 떠돌이 노래꾼, 회사원 등 주변부 인생들이다. 이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심야식당>의 음식들은 불고기·야끼우동·된장국처럼 결코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허름한 식당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유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고, 조용히 따뜻한 음식으로 위로를 보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포장마차는 <심야식당>과 닮아 있다. 변변한 간판은 없지만 숫자로, 그리고 싱싱한 해산물과 주인장의 푸짐한 인정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부담 없이 들르는 곳이다. 생활에 쫓기고 삶에 치여 사는 서민들의 애환과 한숨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주당에게는 꼭 차수를 쌓아야 할 사랑방이었다.

포장마차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분위기가 격의 없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화에 거리낌도 없고 의사소통도 원활하다. 한마디로 이곳에서는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포장마차는 늘 시끌벅적하다. 불콰한 얼굴로 호기롭게 껄껄껄 웃는 사람들이 있고, 처음 본 사람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며 술 한 잔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고달픈 직장 생활과 상사의 뒷담화를 안주 삼아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에서 속닥속닥 사랑을 주고받는 연인들까지, 구구절절 사연도 많다.

고향을 떠난 누군가는 겨울날 펄럭대는 천막소리가 끊이지 않던 포장마차를 그리워하고 거기에서 술잔 기울이던 벗들을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이 지긋한 중년이 돼 40년의 시간과 추억이 고스란히 저장된 포장마차를 찾아 추억을 곱씹어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밤이면 여수 원도심의 연등천을 따라 늘어선 포장마차가 뿜어내는 불빛과 곰장어, 병어, 문어, 낙지, 해삼, 가오리, 생선구이 등 미각을 자극하는 싱싱한 생물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시간과 추억으로 켜켜이 쌓인 공간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자극하며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한때 하루 매출 60~70만 원, 주말에는 100만 원을 벌만큼 활활 타오르던 전성기가 있었다. “단골손님 중에 멀리 서울이나 타 지방에 가 있다가 여수로 돌아오면 꼭 찾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문을 열어야죠.”

그러나 이런 소소한 바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이제 70줄에 접어든 나이가 야속하기만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야속한 것은 지난해 문을 연 종포해양공원의 여수밤바다 낭만포차다.
 

▲ 지난 9월 8일 오후 11시경 연등천 포장마차. ⓒ 마재일 기자

평일 공치는 날 많고 주말도 예전 같지 않아
장사 너무 안 돼 일수 대출 쓰는 상인도 있어
“시장이 그러면 못 써…공평하게 행정 펼쳐야”

주철현 여수시장이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낭만포차가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이곳 상인들의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정작 여수지역 야간 포장마차의 원조 격이랄 수 있는 연등천 포장마차 상인들은 폐점 위기에 몰리고 있다.

지난 9월 4일과 8‧9일, 11월 6일 저녁에 만난 연등천 포장마차 상인들에 따르면 지난해 낭만포차가 영업을 시작한 이후 매출이 크게 하락하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상인들은 매출을 집계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이 커 집세는 물론 주민세도 못 낼 지경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심지어 일수 대출로 근근이 포차 영업을 하는 상인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포장마차 상인 A씨는 “낭만포차가 생긴 이후 장사가 안 되도 너무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같이 벌어먹고 사는 처지에 낭만포차를 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낭만포차에 비해 가격도 비싸지 않고 음식의 질도 떨어지지 않는데 여수시가 너무 낭만포차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 시장 치적이라고는 하지만 이곳 포장마차는 유령 취급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인 B씨는 “낭만포차에서는 밤바다 야경을 보면서 술을 마실 수 있고 젊은 가수들(버스커)이 노래도 부르는데 거길 가지 누가 여길 오겠느냐”면서 “그래도 (여수시가)양쪽 다 같이 살게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서운함을 내비쳤다.

상인 C씨는 “오늘도 완전히 죽을 쑤고 앉아 있다”며 “낭만포차가 생기기 전과 후의 매출 비교를 할 것도 없이 타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토요일은 낭만포차에서 넘어오는 손님이 좀 있어 그나마 괜찮은데 평일에는 한두 집 빼고는 거의 공치는 날이 많다. 손님 한 테이블 받으면 그나마 성공했다고 말할 정도로 장사가 안 된다”고 전했다. 그 역시 “시장이 그러면 못 쓴다. 우리도 서민이다. 공평하게 행정을 펼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 지난 9월 8일 오후 10시 20분경 연등천 포장마차. ⓒ 마재일 기자
▲ 지난 9월 8일 오후 10시 30분경 연등천 교통시장 포장마차. ⓒ 마재일 기자

상인 D씨는 “우리가 돈이 있으면 미쳤다고 새벽까지 고생고생하면서 이 짓거리를 하겠느냐. 한 푼이라도 벌어먹으려고 하는 일이고 더럽고 아니꼬워도 없응께 이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수시에 백날 얘기해 봤자 소용없더라”면서 “낭만포차는 하루에 수백만 원씩 매출을 올린다고 들었다. 정말 가슴이 답답해 화병이 생길 지경이다”고 했다.

상인 E씨는 “여수시장 원망도 하고 일부 상인들은 시청 앞에서 드러눕자고도 한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상인들에게는 그마저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쉬는 일요일에 일부러 낭만포차가 있는 해양공원엘 가봤다. 내가 보기에도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밤바다와 하멜등대, 버스킹 등 북적북적 대는 분위기가 좋더라. 누가 연등천 포장마차까지 술 마시러 올까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말했다. 이 상인은 “이곳 상인들끼리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잘하고 친절하게 대응하자고 다짐하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손님을 오게 할 다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데 영세한 상인들로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10년 넘게 포차를 운영하고 있는 상인 F씨는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오후 1시경에 포차 끌고 나와서 준비하면 5시경에 영업을 시작한다. 요즘은 저녁 10시 정도 되면 손님이 뚝 끊긴다. 평일 손님을 한 테이블도 받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과거 한창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 60~70만 원, 토요일엔 100만 원 벌 때도 있었다. 낭만포차 생긴 이후에는 주말에도 20만 원을 못 번다.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 손님이 3분의1로 확 줄었다. 공치는 날도 많다. 새벽까지 한 테이블이라도 더 받으려고 기다려보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내일은 손님이 있겠지 하며 상인들끼리 ‘오늘은 이만 후퇴하자’고 웃으면서 위안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요즘 같으면 정말 힘이 나질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인은 “전에는 모든 거래를 현찰로 하고 외상도 없었다. 장사가 안 되다보니 시장에 외상값은 이리저리 깔려 있다. 그렇다고 영업을 안 할 수도 없지 않느냐”면서 “집세도 밀려 있고 주민세도 못 낼 정도다. 정말 가슴이 턱턱 막히고 미칠 지경이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장사가 안 되니까 일수 대출을 쓰는 상인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일수 대출을 또 쓰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관광객이 1300만 명이 왔다고 하고,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들어서는 데 어찌된 일인지 없는 사람들만 더 못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의 포장마차를 인수한 지 2년 됐다는 상인 G씨는 “싱싱한 해산물을 즉시 맛볼 수 있는 곳이 포장마차의 묘미인데 팔리지 않으면 구이를 하거나 이마저도 안 되면 집으로 가져가는데 손해다. 오늘 손님 한 테이블 받아 2만8000원 벌었다. 식재료, 얼음‧술값 등을 제외하면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에는 포장마차 이동비용 1만 원, 집에 오가는 택시비도 아까울 정도”라고 했다. 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거라도 해야 먹고 살 것 아니냐”면서 “낭만포차는 TV에도 나오고 그러던데 여기는 죽든지 말든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6일 오후 10시 30분경 연등천 포장마차. ⓒ 마재일 기자
▲ 지난 6일 오후 10시 5분경 연등천 교동시장 포장마차. ⓒ 마재일 기자

매력 갖출 콘텐츠 필요

비교적 저렴한 가격 때문에 주머니가 가벼워도 싱싱한 해산물 안주에 여럿이서 술을 마실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비싸졌다는 인식이 늘었고, 카드결제가 안 된다는 불편함이 이곳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관광객들이나 시민들이 이곳에 굳이 올만큼 매력적인 곳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낭만포차와 견줄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률적인 메뉴를 지양하고 각 포차마다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필살기 음식 개발과 손님의 다양한 입맛과 취향을 고려한 레시피 보급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뉴스탑전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