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품격 높이는 박물관 건립과 지역 문화유산 되찾기] ② 안동·경주·상주 등 민관 협력해 문화재 되찾기 시민운동 전개

▲ 700여 년 전 원나라에서 출항해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침몰된 중국국제무역선인 신안선 발굴 당시 유물 노출 상태 재현 전시 모습.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신안선 그 보물들, 40년 만의 귀향전’을 개최하고 유물을 전시했다.(사진=문화재청)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답다

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는 그 지역 주민들의 뿌리이자 자부심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정신이며 정체성이다. 문화재는 각 지역이 발달과정에서 공유했던 시대정신과 그 뿌리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해석하면 각 지역이 오래전부터 중시해 오던 가치 등을 엿볼 수 있고 그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의 문화재를 되찾는 일은 곧 지역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지역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또한 당대 사람들이 공유했던 지역의 가치를 찾고 문화재를 제자리에 되돌려 역사의 맥락을 찾아주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답다.

지역의 소중한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과 문화재와 역사 유물을 통한 지역문화사 재편성과 구성은 지방분권을 통한 지역 자치 역량 강화와도 부합한다. 중앙정부에 의한 문화재 독점은 문화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와 분권에도 반하는 일이다.

그동안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국내로 환수하기 위한 노력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국내에서 다른 지역으로 반출된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그러나 지역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타 지역으로 반출된 문화재 환수를 위해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설립 등 최근 일부 지자체와 민간단체에서 지역 문화재 되찾기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 국보로 지정된 지 53년 만에 고향 안동으로 되돌아온 하회탈. (사진=안동시청)

안동 하회·병산탈 53년 만에 고향으로
경주·상주시 등 민관 협력해 시민운동

국립중앙박물관이 ‘제대로 된 보관시설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보관하고 있던 국보 제121호 하회탈 11점과 병산탈 2점이 지난해 12월 27일 53년 만에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안동시립민속박물관에 안치됐다. 안동시는 그동안 지역 대표 문화재인 하회탈을 고향에서 보관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원래 소유주인 하회마을보존회 측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장소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1995년과 2004년 안동에서 탈을 되찾아오자는 환수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경주시, 상주시, 김해시 등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대학박물관, 발굴기관 등 타지의 기관에 소장된 문화재 찾아오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경주시도 현재 청와대 내에 있는 일명 ‘미남석불’로 불리는 ‘석불좌상’(서울시 유형문화재 24호)을 고향인 경주로 옮겨 오기 위해 지역민과 시민사회단체가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 경주지역 문화계와 시민사회단체가 협력해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지광국사 탑(강원도 원주), 경천사지 10층 석탑(북한 개성시) 등 국내외에 있는 경주 문화재 귀환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지난 2014년 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상주시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명재상 황희 정승의 영정을 상주박물관으로 가져왔다. 이 영정은 황희 정승의 생존 당시 그려진 유일한 초상화 원본이다. 상주시 옥동서원(玉洞書院, 경북도 기념물 제52호)에 567년간 보관하고 있다가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후 8년 만인 2016년 다시 상주로 돌아왔다.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석불좌상’ (사진=문화재청)

추진위는 서울의 개인이 소장한 사헌부 감찰 교지 등 170점도 기증 받았다. 나아가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전시된 철조천수관음보살상과 일본에서 소재가 확인된 정기룡 장군 투구 반환에도 힘을 쏟고 있다. 추진위원회는 자체적으로 국내 타지에 보관돼 있는 문화재 목록을 만들었다. 그 결과 기관 11곳과 개인 4명에 1만6416점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해시의회는 지난해 12월 19일 가야시대 대표 유물인 국보 기마인물형토기 반환 건의안을 의회에서 채택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환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해시의회는 반환 이유에 대해 “기마인물형토기는 김해에서 출토된 가야 대표 유물인데 김해박물관에 전시되지 못하고,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보관중에 있어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특히 “현 정부에서 국정 주요과제로 가야역사의 올바른 정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정체성 확보의 상징물은 기마인물형토기”라고 강조했다. 시의회는 “현재 기마인물형토기는 시청을 비롯 시내 곳곳에 모형이 세워진 상징물인데 진품이 다른 도시 박물관에 있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마인물형토기는 김해지역에서 출토된 가야의 대표 유물이지만 출토 당시 문화재를 보관·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돼 현재까지 경주박물관에 보관·전시돼 있다.

▲ 김해시청 앞 기마인물형토기 모양의 동상. (사진=김해시청)

인구 5만 의성군 조문국박물관, 문화재 3000점 이상 찾아와

경북 의성 조문국박물관은 2016년 국가귀속 발굴매장문화재 관리기관으로 선정된 이후 의성 지역에서 발굴된 매장문화재 3000점 이상을 인수했다. 조문국은 경북 의성군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초기 국가다.

조문국 출토 매장문화재 역시 타 지역 박물관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런 사실은 안 지역민들은 “지역의 고대 유물이 보관상의 이유로 외부에 흩어져 있는 것은 안 된다”면서 “조문국 유물을 되찾아 오는 것 자체가 지방문화 주체성 회복의 상징”이라며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3년 조문국박물관이 개관했다. 인구 5만여 명에 불과한 소규모 지자체가 건립한 박물관이 이들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신안 보물선 유물’ 지역 시민단체 환수운동 전개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9월 12일부터 12월 31일까지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700여 년 전 원나라에서 출항해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침몰된 중국국제무역선인 ‘신안선 그 보물들, 40년 만의 귀향전’을 개최했다. 신안선은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한 어부가 건져 올린 도자기를 시작으로 ‘세기의 발견’이라 불리며 20세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한국 수중발굴 첫 보물선이다.

전시회에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0차례의 발굴 이후 지금까지 여러 곳으로 흩어져 있던 4500여 점의 보물들을 선보였다. 이들 유물은 650여 년간 신안 증도 앞바다에 묻혀 있다가 건져 올린 2만6000여점 가운데 일부다. 실물크기(34m)로 복원된 신안선도 함께 전시됐다.

이들 유물은 당시 문화공보부와 해군이 발굴한 뒤 서울로 옮겨 보관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리권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넘어갔다. 연구소는 유물을 빌려와 이번 전시회를 열었다.

▲ 신안선과 전시 유물 전경. (사진=문화재청)

그러자 목포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학자들은 신안 보물선 유물을 발굴 인근 지역에서 소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발굴 문화재는 그 현장이나 가까운 곳에 상설전시관을 지어 전시하고 보관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지자체가 함께 유물 환수운동을 펼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발굴 당시에는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넣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연구소 안에 대형 전시관이 있다는 점이 환수 운동을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물론 지역 문화재를 되찾아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역 문화재를 원위치로 가져오는 것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사후 보관·관리에 있어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문화재를 보관할 박물관이 없는 지자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지역 정체성, 역사 등을 고려해 문화재를 되찾아 오려는 노력은 당연하지만 그에 앞서 전제돼야 할 것은 지역이 문화재를 보존·관리할 수 있는 시설과 능력,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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