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마재일 대표기자

▲ 마재일 기자

우리는 정말 선거를 통해 좋은 정치인을 뽑을 수 있을까?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거액의 뇌물수수와 회사 비자금 횡령, 국민들로부터 아무런 위임도 받지 않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등 권력을 이용한 사익 추구는 국민들을 대노(大怒)케 했다. 사실 이런 지도자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몰락에서 우리 국민들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국가 시스템의 부실도 있지만 안하무인으로 국민을 깡그리 무시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한 가지만 더 짚어본다면 그들이 지도자가 될 만한 인격과 자질을 갖추었는지 검증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재판을 받고 있는 두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그들의 인격적 결함을 검증하는데 소홀했다. 그들이 내건 화려한 토건 중심의 공약,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적 후광과 이미지, 경제를 발전시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막연한 환상에 매몰됐다.

이들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인 보수세력(새누리당)은 김대중의 국민의정부와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지만 국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 건 이명박·박근혜 정부였다. 국민들에게는 ‘사기 당한 10년’이었다. 사기는 피해자의 삶의 희망을 앗아가 절망에 빠뜨리게 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의심케 해 골병드는 사회를 만든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 때문에 우리가 고통과 불행을 겪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 대통령 선거를 다시는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교훈치고는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역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지방선거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과거 대선 후보의 인격 검증에 실패했던 것처럼 시장이나 광역·기초의원 출마자들에 대한 인격과 자질 검증에 너무나 무력한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이를 검증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후보의 됨됨이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각 정당이 공천 작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 여수시 선거직에 도전한 후보는 시장 5명(정수 1명), 광역의원 24명(정수 6명), 기초의원 57명(정수 26명) 등 총 86명이다. 후보들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발품을 판다. 출·퇴근길, 시야가 잘 확보되는 건널목에서 손을 흔들거나 부부가 함께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후보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 오는 날에도 우비를 쓰고 열심히 인사를 한다. 하늘에 있는 별도 따다 줄 것 같은 절박함이 묻어난다.

모두들 자신이 지역을 발전시킬 최적의 적임자라고 한다. 과연 우리는 이들 중 최적의 적임자를 뽑을 수 있을까? 그리고 뽑아 놓은 이들이 정말 최적의 적임자인 것일까? 그동안 우리들이 뽑은 시장, 광역·기초의원을 통해 삶에 실질적인 어떤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정말 선거를 통해 좋은 정치인을 뽑을 수 있을까?’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자발적 검증에 나서야 한다. 언론, 정치인, 시민단체의 몫으로만 치부해선 안된다.

후보 80여 명 중에서 진정 시민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지성과 양심을 갖춘 인물이 나올지 자못 기대되면서도 염려가 된다. 시민에게 잠시 위임받은 특권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정치꾼은 없는지 살펴 볼 일이다. 후보들에게서 받은 명함의 뒷면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학력과 경력을 내세운다. 이것은 그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할 뿐 인격이나 자질을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회의원들이 가진 학력과 경력으로만 따진다면 이미 우리나라는 수준 높은 정치와 유럽국가에 버금가는 복지국가가 돼 있어야 한다. 후보의 명함이나 공보물, 언론에 보도된 정책·공약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요구된다.
 

▲ 6·13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가 출근길 도로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좋은 정치인을 뽑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이번 더불어민주당 여수시장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은 서로 진짜 민주당 후보, 가짜 민주당 후보라고 공방을 벌였다. ‘당신은 진짜 민주당 후보입니까?, 가짜 민주당 후보입니까? 라고 물으면 가짜 민주당 후보라고 답할 후보는 없을 것이다. 진짜 민주당 후보가 좋은 정치인이고 가짜 민주당 후보는 나쁜 정치인인가? 우리는 좋은 정치인은 고사하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뽑을 혜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역대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들 모두 우리가 기대하면서 투표했던 것처럼 좋은 정치인이었는가?

좋은 정치인을 뽑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의 투표행위가 충분한 고려를 통해 이루어지는 합리적 과정이 아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후보자에 대한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특정한 이슈들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학습하지 못한 채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민선6기 주철현 시장의 핵심 공약인 사립외국어고등학교가 정말 여수에 필요한 것이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당선된 이후에 진행됐다. 결국 갈등과 논란 끝에 무산됐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와 교육철학이 충돌하는 공약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철현 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여수시장 경선에서 탈락한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되는 돌산 상포지구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과정을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언론인들조차도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사실 확인에 접근하려는 노력보다는 ‘카더라’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지난 19일 여수MBC에서 생중계된 더불어민주당 여수시장 경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주철현 시장은 “민선6기 지난 4년 여수가 눈부신 발전이 있었고 도시 브랜드가 상승하면서 연간 13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대한민국 대표 해양관광도시가 됐다”고 했다. 그리고 시 채무 900억 원을 갚았고 세수가 1100억 원 이상이 늘었다고 했다. 치적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민의 삶은 어떻게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으며, 알려주는 곳도 없었다. 나머지 후보들도 다양한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만 확 와 닿지 않는다.

유권자 눈높이 높아졌는데 과거 선거 행태 되풀이

다수의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만큼 그 정신이 오는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확산돼, 보다 튼튼한 뿌리를 내릴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면서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인식이 그 어느 선거 때보다 강하다. 그만큼 여당인 민주당 후보들이 선거에 임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하지만 공천 후보를 위한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촛불혁명 이전의 선거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김없이 공천 잡음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유권자의 눈높이와 정치의식은 높아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여전히 과거의 선거 행태를 되풀이 하고 있다. 민주당 후보들이 그동안 선거 운동에서 보여준 것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얼마나 친밀한가였다. 문 대통령이 잘 해서 민주당 후보들이 그 덕을 보고 있는 것이지 후보들이 잘 해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어느 유권자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바란 건 정치권력의 근본적인 변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는 <눈 뜬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의 83%가 백지투표로 정부에 항의하는 어느 도시의 정치상황을 그려낸다. 정부는 음모를 의심하고 도시에 비밀경찰을 투입하고 거짓말탐지기로 시민들을 테스트하는 등 주도자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추적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시민들이 음모에 가담할 수 있었는지는 오리무중에 빠진다. 어떤 정치적 합의도, 조직적 배후도, 폭력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한다. 급기야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타 도시와의 교류를 막고 수도에 군대를 배치한다.

왜 시민들은 기권표가 아닌 백지투표를 던졌을까? 시민들이 눈을 뜬 것이다. 기권표를 던지면 굳이 투표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백지표는 투표는 했으나 어떤 후보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여러 후보 중에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에게 시위나 그 어떤 정치행위보다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결국 시민들이 바란 건 정치권력의 근본적인 변화였다. 백지투표라는 방식의 저항을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 정치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좋은 정치인 뽑으려면 혜안 길러야

후보에게 남은 50여 일은 이 도시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 시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등 자신의 정치 철학과 도시 비전을 정책과 공약을 통해 알리는 기간이다. 유권자에게는 후보를 파악하고 비교하며 선택해 가는 기간이다.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 검증은 물론 정책·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한다.

좋은 정치인을 뽑지 못하면 그에 대한 책임과 피해는 유권자들에게 돌아온다. 지역 정치인들이 잘 못한다고 비판만 해서는 지역정치가 변하지 않는다. 지방선거는 다른 어떤 선거보다 지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선거다. 좋은 시민이 좋은 정치인을 뽑는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꾸준한 정치적 관심을 공유하고 학습한 시민들의 역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올바른 정치철학과 자세를 가진 정치인을 판단할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현재의 선거 행태를 보면 이번 지방선거 또한 지역민에게 큰 변화를 선사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지역의 일꾼을 뽑는데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장과 광역·기초 의원 등 여러 선거에 많은 후보가 나서는 지방선거의 특성상 유권자가 후보 모두를 자세히 검증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좋은 정치인을 뽑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투표로 심판하자. 이런 노력도 안하고 뒷담화 하기 없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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