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마을 주민들은 죽기 전에 창문 열고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다. 아이들은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온 적이 없다. 악취 때문에 두통약을 달고 산다.

▲ 도성마을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

수십 년간 분뇨 악취와 노후 석면 슬레이트, 주변 산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등으로 심각한 환경·건강 피해를 입고 있다며 정부 기관에 실태조사와 종합적인 환경오염 대책 마련을 촉구한 여수의 한 마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마을 주민은 ‘마을을 살려 달라’며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호소의 글을 올렸고, 언론을 통해 마을의 실태가 알려지자 충격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와 지역사회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건강권과 환경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와 여수시, 지역 정치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주민들은 이곳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마을복지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가축 분뇨 냄새와 산단에서 날아오는 먼지 때문에 빨래를 널면 옷이 새까매져 방이나 거실에서 말린다. 그래도 옷에 냄새가 밴다”고 말했다. 1년 내내 제습기를 틀고 살아야 할 정도라고 했다. 특히 저녁~새벽에 냄새가 심한데 새벽에 문을 열면 축사 분뇨와 석탄을 태우는 듯한 악취가 나고 마을 앞이 뿌옇다고 했다.

주민들은 “여수국가산단, 광양국가산단, 율촌산단에 둘러싸여 오염물질과 악취로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기업에서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했다. 특히 마을과 국가산단과의 직선거리가 1.9km정도 밖에 안 돼 수십 년간 대기오염물질에 노출되고 악취에 시달리는데도 환경영향평가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평소에 기침을 자주 하는 주민이 많고 폐암으로 사망한 주민도 많다. 현재 마을 주민 9명이 갑상선암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고 대장암에 걸린 주민도 있다”며 “이 작은 마을에서 암 환자가 이렇게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했다.

특히 수백채로 추정되는 낡은 석면 슬레이트 축사 지붕이 주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석면 슬레이트는 석면이 10~15% 포함된 대표적인 석면 고함량 건축 자재로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면서 ‘침묵의 살인자’ ‘죽음의 먼지’로 불린다.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이나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도성마을 석면 슬레이트 지붕은 대부분 내구 연한 20~30년을 크게 넘어선 상태여서 주민들은 자연적인 풍화와 침식으로 부식된 슬레이트 석면 가루에 자연스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도성마을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 마재일 기자가 주민이 거주하는 집 벽 옆에 고여 있는 축산 분뇨를 삽으로 젓자 악취가 진동했다. (사진=김민준)

“아이들이 이 마을에 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민 A씨는 “분뇨 냄새뿐만 아니라 산단에서 날아오는 냄새 또한 지독하다. 문틈과 감나무 잎 색깔이 시커멓다. 감이 잘 안 열리고 죽는 나무도 있다. 마을에서 나는 채소·과일은 아예 먹지 못하고 배추는 밖에서 사와 김치를 담가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옥상과 마당에는 검은 가루가 날아다니고 빗물에 쓸린 검은 먼지들이 곳곳에 눌러 붙어 있다”고 했다.

A씨는 “손주가 학원에 가면 친구들이 냄새가 난다고 한다. 아무리 그날그날 빨아서 입혀도, 방안에서 말려도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마을 밖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좀처럼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축산업을 하는 주민은 5가구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하는데 냄새 때문에 아이들이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냄새 좀 안 나게 해달라고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죽기 전에 창문 열고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B씨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냄새가 난다고 한다. 탈취제를 사용해도 냄새가 난다. 집 안에서 말린 옷을 입고 나갈 때면 엄청 예민하다. 아이들은 학교 다닐 동안 상처를 안고 산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 가면 이 마을에 살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이, 심지어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말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며 “애양원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나. 그러나 아이들은 애양원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친구를 마을에 데리고 오는 아이들도 없다. 특히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냄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악취와 석면에 노출돼 있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민 C씨는 “여기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여수시내에 이런 곳이 있었으면 그냥 놔뒀겠냐”며 “도성마을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건강권과 환경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33명의 아이들은 누가 지켜야 하나. 국가와 여수시가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또 축사가 모기 서식지가 되면서 모기 피해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주민 D씨는 “뒷골이 땡기고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을 달고 산다. 약국에 매일 두통약 사러 가는 게 일이다. 여기서 하루만 살아봐라. 우리가 축산을 할 때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참고 살았지만 지금은 주민들이 거의 안 한다. 미칠 지경이다”고 말했다.
 

   
▲ 도성마을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 도성마을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주민 E씨는 “이 마을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알게 모르게 당한 차별이 수없이 많다. 우리는 법과 행정 테두리 밖이다. 여수시에서도 우리 마을은 외딴 곳이다. 여수시민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오죽했으면 행정구역을 순천이나 광양으로 바꿔달라고 하고 싶겠냐. 수십 년간 민원을 제기해도 소용이 없더라. 그런데도 주민들은 불이익을 당할까봐 되레 노심초사할 정도로 순박하다. 그게 죄라면 죄”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천대와 멸시, 억압에 순응하며 살아온 부모 세대들이 너무 안쓰럽지만 한센인 2세, 3세, 4세는 무슨 죄가 있느냐”며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전국의 한센인 정착촌 중 가장 열악하고 낙후돼 있는 곳이 도성마을이다. 다른 곳의 한센인들조차도 이런 마을이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주민 F씨는 “마을 옆에 주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념관 하나 들어온 것 외에는 처음과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오죽하면 쓰레기 매립장이나 원전 폐기물 처리 시설을 유치하는 것이 낫다고 하겠나. 이런 시설이 들어오면 마을 발전기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만큼 도성마을의 생활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 도성마을의 폐축사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두 차례의 태풍으로 축산시설이 초토화되면서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 받았지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주민들은 “2003년 태풍 매미로 피해를 당한 집과 축사들이 복구가 안 되고 그대로 있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이 또다시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이 정도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어야 했다. 당시 여수시에서 피해 상황을 둘러보고 갔는데 그 뒤 아무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 G씨는 “한센인 마을이라고 누구도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했으면 태풍 피해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야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에 못 이겨 스스로 위축돼 있다 보니 나서서 일을 볼 주민도 없었고, 행정 당국에서도 한센인 마을이라고 외면했다는 것이다.

과거 도성마을에는 우편집배원이 오지 않았다. 주민 H씨는 “지금은 마을에서 지정한 주민이 우체국에 가서 직접 우편물을 수령해 온다”며 “한센인 마을인데다 악취도 심해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자식들에게, 손자들에게 이런 더러운 환경을 물려줄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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