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이사 가고 싶다

▲ 여수시의 대표 관광지인 고소천사벽화마을에 관광객이 몰리고 있으나 원주민들은 무질서한 관광과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차량이 뒤엉킨 고소천사벽화마을의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카페·펜션 등 우후죽순 들어서고 관광객 붐비면서 주민들 생활 큰 불편

‘오버투어리즘’, ‘디즈니피케이션’, ‘투어리시티피케이션’. 지나친 관광정책과 과잉 상품화 탓에 겪게 되는 생활의 불편함은 물론 삶터의 파괴 현상을 지적하는 용어들이다. 이 중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은 여행지에 수용능력을 넘어선 관광객이 몰려 주민 삶을 침해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한 해 관광객이 1000만 명 이상 오는 여수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여수시의 대표적인 관광 관광지가 된 고소천사벽화마을의 사례를 보면 과잉 관광 상품화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고소천사벽화마을은 평일은 물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방문객이 더욱 늘어나면서 관광객뿐만 아니라 주민들조차 교통체증과 주차난, 소음, 쓰레기, 사생활 침해 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소동과 중앙동에 걸쳐 있는 천사벽화마을 일대는 서민이 많이 사는 곳이지만 지금은 카페와 펜션 등이 동네 곳곳에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주민과 관광객 불편은 물론 고성과 싸움 등 마찰을 빚는 실정이다.

▲ 여수시의 대표 관광지인 고소천사벽화마을에 관광객이 몰리고 있으나 원주민들은 무질서한 관광과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차량이 뒤엉킨 고소천사벽화마을의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지난 1일 오후 고소천사벽화마을은 보행자와 뒤엉킨 차량, 어수선한 공사 현장 등 사실상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였다.

고소아파트 옹벽에는 아파트자치위원회 명의의 ‘조망권 침해하는 건설행위, 강력히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건물 벽과 전봇대 등에는 고소동 주민 대책위가 내건 ▲커피숍 옥상 영업단속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일방통행 보행로 확보 ▲마을버스 운행 ▲금연거리 지정 검토 ▲공영주차장 확보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부착돼 있었다.

도로를 가로질러서는 ‘당신들이 큰소리로 즐길 때 주민들은 고통의 시작이다’,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당장 시행하라’, ‘소음, 빛공해, 담배연기, 사생활 침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문구가 적힌 노란색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 지난 1일 고소천사벽화마을. (사진=마재일 기자)

특히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교통체증은 심심찮게 벌어졌다. 운전자간 고성이 오가거나 짜증을 내는 장면도 목격됐다. 도로에 나와 있던 주민들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주차난뿐 아니라 소음과 차량 매연으로 몸살을 앓는가 하면 쓰레기를 집안에까지 버리는 관광객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2012년부터 화려한 벽화마을로 재탄생한 이후 가파르게 늘어나는 관광객 때문에 고소동 일대는 북적북적하지만, 원주민들의 삶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되레 주차난, 사생활 침해 등 피해만 커지는 상황이다.

▲ 지난 1일 고소천사벽화마을. (사진=마재일 기자)
▲ 지난 1일 고소천사벽화마을. (사진=마재일 기자)
▲ 지난 1일 고소천사벽화마을.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 교통 개선 설명회…주민들 분통
“시장·공무원 이곳서 하루만 살아 봐라”

여수시는 지난달 30일 중앙동 주민센터 회의실에서 고소천사벽화마을 교통 개선(안) 주민설명회를 열고 일방통행 지정, 거주자 전용주차 구역과 보행로 설치, 주차장 조성 등에 대한 시 계획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주민들은 이날 관광객 증가에 따른 교통체증, 주차난, 소음, 쓰레기 등의 생활 불편을 호소했다.

주민 A씨는 “일방통행을 하게 되면 한신아파트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여수등기소 쪽에서 들어와야 하고 하루에도 수차례 집과 밖을 오가는데 엄청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일방통행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고소동에서 50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B씨는 “토·일요일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도로가 완전히 마비된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40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C씨는 “어느 날 갑자기 카페가 우후죽순 생긴 뒤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관광객은 늘어나고 마을은 복잡해지고 있는데 3년이 넘도록 대책 회의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 갔다 오면 주차할 공간이 없다. 차를 종화동에 주차해놓고 걸어서 온다. 날이 갈수록 그 시간이 길어지고 주민들은 더 피곤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관광객이 밤에도 많이 온다. 금·토·일 오후 시간에 와서 4~5시간만 근무를 해보면 주민들을 금방 이해할 것이다”고 했다.

▲ 고소천사벽화마을을 방문한 관광객. (사진=마재일 기자)
▲ 고소천사벽화마을에 설치된 안내판. (사진=마재일 기자)

주민들은 거주자 전용주차 구역 설치에 따른 요금 징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는 조례에 따라 1개월 이용료로 3만 원을 징수할 계획이다. 그동안 부담 없이 자기 집 앞에 주차를 해오던 주민들은 느닷없이 1년에 36만 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주민 D씨는 “관광객이 많이 와서 영업하는 분들은 좋겠지만 원주민들한테는 보탬이 된 게 하나도 없는데 누가 1년에 36만 원을 내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년째 불편을 겪고 있는 주민들이 일방통행 지정, 거주자 전용주차 구역, 보행로 설치 등의 당연한 요구를 시가 마치 혜택을 주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것은 당연히 시가 해야 할 일이다”고 했다. 그는 “조용한 동네를 관광지를 만들어서 상업시설을 허가 해줬으면 주민들한테도 뭔가가 돌아와야 하지 않나. 주민들이 양보할 것은 양보한다. 주민들을 살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 놨으면 시가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도로를 침범한 공사 자재가 관광객과 주민, 차량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고소천사벽화마을의 카페 신축 공사 현장. 공중에 붕 떠 있는 계단을 주민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고소동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E씨는 “상업시설을 허가 해줬으면 당연히 주차시설이 갖춰져야 하는데, 주차장을 갖춘 카페는 2곳 정도에 불과하다”며 “지난 추석 때 집 근처에 주차를 못해 결국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한 후 짐을 지고 힘들게 걸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 입구 골목길에도 주차를 해놓아 짐을 들고 집으로 갈 수가 없다. 차를 빼달라고 차 주인한테 전화하면 결국 싸움이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올 여름처럼 극심한 무더위에는 문을 열고 생활하는데 카페에서 밤 10시 넘어서까지 음악을 틀어 놓는다”고 했다. 그는 특히 “매주 금·토·일 저녁 10시까지 하는 낭만버스킹은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시청에 단속해 달라고 전화해도 단속할 사람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고소천사벽화마을의 카페들. (사진=마재일 기자)
▲ 고소천사벽화마을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 (사진=마재일 기자)
▲ 고소천사벽화마을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 (사진=마재일 기자)

“주차비 36만 원 내라고?…택시·치킨 배달 NO”

그는 “관광객이 지나다가 집에 텀블러, 종이컵, 캔을 던져 어머니가 깜짝 놀란다. 주민들은 관광객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을 이해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차를 가지고 있는 주민들 대부분은 낮에 회사에 있고 하루 내 집에 있는 주민들은 차가 거의 없는 노인들이 대다수인데 1년에 주차비 36만 원을 내겠느냐”고 말했다.

한신아파트에 산다는 주민 F씨는 “여름에는 시끄러워서 문을 못 열고 산다. 에어컨 전기요금을 시에서 보전해 주는 것도 아니잖나. 시장이 와서 하루만 살면 주민들의 이런 고통을 알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 불편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시가 보조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되레 주차비를 받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이 관광객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당하며 생활하는 만큼 마을버스 운행 등 주민 편의를 위해 시가 주도적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민 G씨는 “마을 입구에 공영주차장을 만들어 (차량 통행증을 소유한)주민들만 차를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관광객은 주차를 한 후 걸어서 다니게 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대형 카페 난립은 처음부터 문제였다”고 지적한 뒤 “주민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74년을 살았다는 주민 H씨는 “남산동에서 택시 타면 요금이 7~8000원 나오고, 택시가 아예 오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민 I씨는 “밤 12시까지 술 먹고 깔깔대는 것은 그나마 참을 수 있다. 그런데 낭만포차에서 새벽 4~5시까지 술 먹고 깔깔대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사를 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 고소천사벽화마을에 설치된 전망대. (사진=마재일 기자)
▲ 고소천사벽화마을에 설치된 전망대의 밑 쓰레기. (사진=마재일 기자)

주민 J씨는 “이곳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정말 모른다. 집에 있어도 노래를 다 배울 정도다. 택시 요금이 많이 나오는 것은 물론 차가 밀려서 싸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경찰이 와도 소용없다. 주민들 말이 거짓인지 진짜인지 와서 한 번 살아보라”고 했다. 마을 도로에서 만난 주민 K씨는 “택시는커녕 저녁에 치킨을 배달시켜도 오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소동 천사 전망대 인근에 사는 주민 L씨는 주말과 공휴일이 두렵다며 안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들이 모처럼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싶어도 아침부터 관광객들의 발자국 소리와 떠드는 소음 때문에 쉬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집 앞에 들어선 펜션 때문에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또 전망대에서 새벽 1~2시까지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해 시에 전망대 철거를 요청했으나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전망대 아래에는 방문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널려 있는 등 관리도 부실했다.

낭만포차 인근에서 올라가는 천사벽화마을 진입로에는 철로 된 대문에 온통 날카로운 못이 박혀 있어 자칫 안전사고도 우려되고 있다.
 

▲ 낭만포차 인근에서 올라가는 천사벽화마을 진입로에는 철로 된 대문에 온통 날카로운 못이 박혀 있어 자칫 안전사고도 우려되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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