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한센인의 자녀라는 낙인으로 여수 도성마을 주민 2세, 3세, 4세들이 ‘사회적 연좌제’의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아래는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 (드론=심선오 기자)

◇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시대

아버지 살해 혐의로 18년째 수감돼 있는 무기수 김신혜씨 사건, 영화 <재심>을 통해 알려진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강도 살인사건’, 1999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세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가해자가 아니라고 하소연하고 울부짖어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을 감옥에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회적 편견과 격리, 비난의 상처와 고통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습니다. 김신혜씨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무죄를 주장하며 일체의 노역도 거부하고 사실상 가석방의 기회도 포기한 채 18년째 복역 중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고 상대적으로 저학력이며 자신이나 가족 중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은 모두 ‘엄마’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대개 부모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주위만 봐도 많은 사건들은 남이 아닌 가족들, 특히 부모가 나서서 자식 문제를 합의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자들은 자신을 위해 싸워줄 사람이 없거나 부당하고 억울한 처우를 받아도 지레 포기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9월 28일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져 진행 중인 김신혜씨 사건을 제외하고는 두 사건의 피해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 박 변호사는 모든 재심 사건은 무료변론을 하고 있는데 변호할 이들이 소위 ‘돈 없고 빽 없는’ 가난한 사회 약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끈질기게 변호해 주지 않았다면 이들은 평생을 억울하게 고통을 받으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지난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근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스물넷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19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안전한 사회를 위한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타들어가는 가슴을 열어서 얼마나 고통 속에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다른 부모들은 나와 같은 일 정말 겪지 않길 바랍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숨진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어찌 100%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가슴이 먹먹하고 저릴 뿐입니다.

절절한 고통을 호소하는 김용균씨 어머니의 곁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자는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통과하자 어머니는 이제 아들에게 고개를 들 면목이 생겨서 고맙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왜 어머니가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용균이한테 아직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에 비유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며 극한 단식을 하는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공감은커녕 무관심을 넘어 ‘폭식투쟁’을 벌이는 패륜적이고 야만적인 행태를 우리는 지켜봤습니다.

▲ 1926~1928년 광주 봉선리에서 여수 애양원까지 걸어서 이주해온 한센병 환자들. (사진=애양원 역사박물관)

◇ 단지 그대가 한센인, 그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100년을 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온 도성마을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한센병 치료를 위해 여수로 왔던 환자들이 고향이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동네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한센인 정착촌 ‘도성마을’은 지역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도성마을은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애양원에 있습니다. 애양원은 한센병 치유를 위해 1909년 설립된 최초의 민간병원입니다. 지금은 애양병원으로 불립니다. 도성마을은 그 옆에 1976년 한센병 치유자 206명이 정착한 마을입니다.

한센인들은 100년의 세월을 사회와 격리돼 온갖 차별과 편견 속에서 냉대를 받으며 살면서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병이 치유돼도 고향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한센인들은 이곳에서 돼지와 닭 등을 키우며 생계를 이었습니다. 현재 이 마을에는 한센인 70여명과 2‧3‧4세, 일반주민 등 260여 명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이 중 초중고 학생이 33명입니다.

▲ 1976년 5월 도성마을 입주 행사. (사진=애양원 역사박물관)

도성마을은 여수국가산단과 광양산단, 율촌산단 등 사방이 공장으로 둘러싸여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주민들은 수십 년간 주변 산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과 가축 분뇨 악취,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등으로 피해와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건강권과 환경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단 한 번도 대기환경이나 주민건강조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라고 외쳤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마을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느냐며 경악합니다. 마을은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입니다. 두 번의 태풍 피해로 축사 대부분이 파손돼 유일한 생계 수단을 포기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지만 누구하나 손 내밀어 주지 않았습니다. 집과 축사의 경계가 없어 비가 많이 올 때면 분뇨 오염물과 섞인 물이 집 안으로 들어와 냄새가 나도 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111년 만의 최악의 폭염에도 문이라는 문은 하나도 열지 못했습니다. 산단에서 날아오는 매캐한 냄새와 분뇨 악취, 축사 환풍기 소리에 두통약과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잡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이 마땅한 놀이공간이 없어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옆에서 논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습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지내야 하고 학교에서 놀림을 받아야 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 폐축사로 둘러싸인 마을 도로를 주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이곳 아이들은 2k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산단에서 들리는 ‘펑’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지르고 뿔뿔이 흩어지기를 수 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상이 돼 버렸습니다. 산단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나도 그곳을 흠칫 돌아보며 놀랍니다. 주민들은 기계 두드리는 소리에 밤마다 윙윙거리며 집의 창문이 흔들리고, 석유와 가스냄새 그리고 타이어 타는 냄새까지 이곳이 공장지대인지 마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산단에서 날아오는 검은 먼지 때문에 햇볕이 쨍쨍한 날에도 빨래를 널 수가 없습니다. 집 옥상과 마당에는 검은 먼지가 쌓여 있고 빗물과 바람에 쓸린 검은 가루들이 곳곳에 눌러 붙어 비가 오면 씻겨 내려갑니다. 도성마을은 예부터 감맛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감을 사려고 마을에 왔지만 지금은 감과 잎이 시커멓게 변해 주민들조차도 먹기를 꺼려합니다.

밤이면 대낮처럼 환한 조명과 굴뚝에서 솟아나는 불꽃과 매연이 자욱한 이곳에서 수십 년째 살아가고 있는 도성마을 주민들을 국가산단 기업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투명마을이 된지 오랩니다.

▲ 도성마을은 여수국가산단과 광양산단, 율촌산단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대한민국 국민, 여수시민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음에도 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그런 권리가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정부도, 전라남도도, 여수시도, 산단 기업들 그 누구도 마을을 돌아보지 않았고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여순사건 유족들을 수십 년간 옭아매며 몸서리치게 했던 연좌제의 망령이 이 마을 주민들에게도 깊숙이 각인돼 있습니다. ‘한센인’의 자녀라는 낙인으로 2세, 3세, 4세들은 여전히 ‘사회적 연좌제’의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센병과는 전혀 무관한 한센인 2세들은 사회의 편견과 냉대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지금도 별반 나아진 게 없습니다.

제가 만난 젊은 부모들은 한센인 자녀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의 부당한 시선에 당당하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온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겪었던 차별과 편견을 그냥 견뎌내라고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환경을 아이들에게 대물려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지난 8월 마재일 기자가 방류수가 유입돼 검게 변해 악취가 진동하는 갯벌의 웅덩이를 삽으로 젓고 있다. (사진=경광민)

◇ ‘타인의 고통’ 연민만으로는 부족…해결책 공유해야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 얼마나 처참하고 비참한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성찰하지 못하고 그냥 소비하는 정도에서 적당히 공감하고 말죠.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신은 안전하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순간 타인의 고통은 객관화돼 버립니다.

미국의 에세이 작가 수전 손택이 쓴 <타인의 고통>은 1992~95년의 보스니아 내전과 1998~99년의 코소보 사태를 현장 혹은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전쟁의 참사를 찍은 사진들이 ‘하룻밤의 유흥거리’처럼 소비되는 현대사회, 저 멀리 떨어진 분쟁지역에서 살아가는 타인의 고통은 어떤 의미인지를 성찰하는 책입니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후)

<타인의 고통>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사방팔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여 있습니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등의 작은 화면 앞에 붙박인 채로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의 이미지를 속속들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수전은 그것이 타인의 괴로움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사진을 보기만 하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환기시킵니다.

수전은 타인의 고통을 연민의 감정이 아닌 사색과 성찰을 통해서 함께 나누고 책임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보느냐’(시선의 대상)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시선의 태도)의 문제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우리 사회가 ‘해결책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도성마을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 선한 영향력→선한 나비효과→선한 지역공동체

도성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염려할 줄 아는 자세’와 ‘해결책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야말로 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일이 아닌 탓에 안도하며 그것을 보고 연민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걸고 끝입니다.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고통 속에 있는 타인과 우리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그들의 고통과 연결돼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자리와 그들의 자리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까요.

<동부매일신문>은 연일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8월 도성마을의 실상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우리는 글과 사진을 통해 주민들의 고통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겠습니다. 물론 삶은 각자의 것입니다. 반드시 타인을 살펴야 한다고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관심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삶에 있어 고통과 상처는 필연적 동반자이며, 이러한 상처는 타인을 통해서, 신앙을 통해서 치유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남이 어찌되든 나만 잘살면 된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은 내 일이 아니니 먹고사는 일에나 힘쓰자’는 주문을 걸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타인의 고통을 사회의 아픔으로 확산시켜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같이 잘 살자는 선한 영향력이 모이면 선한 나비효과가 되어 선한 지역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신뢰가 요구되는 올 한해의 끝자락입니다.

▲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그 사이사이에 태양광을 설치한 주택이 있다. (드론=심선오 기자)
▲ 도성마을의 축사 석면 슬레이트 지붕. (사진=마재일 기자)
▲ 현재 주민이 살고 있는 집 옆에 방치된 폐축사. (사진=마재일 기자)
▲ 마을의 폐축사. (사진=마재일 기자)
▲ 마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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