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지역 시민단체·정치권 등 국회의원실 돌며 동참 호소
한국당 반대와 정치권 무관심 등으로 관련 법안 ‘발 묶여’

여순사건(여수·순천 10·19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법안이 이번 20대 국회에서만 5건이 발의됐지만 보수정당의 반대와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를 보다 못한 유족과 지역 정치권, 시민단체들이 국회를 방문해 특별법 연내 제정을 호소하고 나섰다.

특히 20대 국회 임기가 1년 3개월 남지 않은 상황에서 특별법이 또다시 자동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여수시의회에 따르면 여수시의회 여순사건특별위원회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유족들은 11일과 12일 국회를 방문해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 여수시의회 여순사건 특별위원회(위원장 전창곤)가 지난 11일 국회 앞에서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여수시의회)

이번 국회 방문은 여수시의회 여순사건특위와 여순항쟁진실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범시민위원회와 (사)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전남도의회 여순10·19사건 특위, 순천시의회 여순사건특위, 구례군의회, 여순사건재경유족회, 여순사건유족협의회장단 등 8개 기관·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이날 여순사건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5명의 국회의원과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 내 법안 제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강력 촉구했다. 특히 특별법을 찬성한 국회의원 139명을 만나 동백꽃 문양의 여순사건 추모 배지를 전달했다. 또 동의를 표하지 않은 국회의원을 찾아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함께 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자훈 재경유족회 명예회장은 “국회는 더 이상 직무유기를 해서는 안 된다”며 “70년 전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을 달래고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매진해 달라”고 말했다.

황순경 여순사건 여수유족회장은 “유족들은 70년 동안 통한의 세월을 살아 왔는데 국가와 정부가 책임을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다”며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특별법이 제정돼 우리 지역민들의 한을 풀어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여순사건특별법에 대해서는 여야가 공감했지만 국방위의 자유한국당이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안건 논의가 어려워졌다”며 “소관 상임위를 행정안정위원회로 이관해 하루빨리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창곤 여수시의회 특위 위원장은 “국회 방문 활동은 아픔을 함께한 지역민들의 특별법 제정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법률 제정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올해 안에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수시의회 여순사건 특위 위원 7명을 맞이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전 정책위의장은 “평소 여수‧순천 지역에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면서 “가능하다, 해보자”고 독려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도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특위 위원들이 중심이 돼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우리나라에서 LIFE의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칼 마이던스(Carl Mydans)가 찍은 사진. 촬영일 1948. 10.

쌍생아 제주4·3은 특별법 제정·국가기념일 지정
여순사건은 70년이 넘도록 진상규명·상처 제자리

지난해 4월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민주광양구례곡성)을 시작으로 같은 당 이용주(여수갑), 정의당 윤소하(비례대표), 바른미래당 주승용(여수을), 더불어민주당 김성환(노원병) 등 의원 5명이 차례로 관련 법안을 냈다.

하지만 보수정당의 반대 등 특별법 제정까지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법안 소관 상임위를 현재 국방위원회에서 행정안전위로 바꿔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서 수개월째 미뤄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먼저 ‘과거사 기본법’을 개정한 뒤 여순사건 특별법을 다루자는 입장이지만 과거사 기본법 개정안조차 정치권의 무관심에 논의가 멈춰 있는 상황이다.

법안이 장기 표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치원 3법과 같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정치권의 관심 자체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많다.

여순사건 특별법안은 지난 2001년 16대 국회에서 김충조(여수갑) 전 의원에 의해 최초 발의됐으나 제정되지 못했다. 이후 18·19대 국회에서 김충조 전 의원과 김성곤 전 의원이 연이어 발의했으나 결국 무산된 바 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정부 진압군과 맞서는 과정에서 여수·순천·광양·구례·보성 등 전남동부 지역민 1만1311명(1949년 전남도 집계)이 희생된 비극이다.

‘쌍생아 사건’인 제주4·3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제주4·3에 대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두 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한 번 사과했다. 그러나 여순사건은 70년이 넘도록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제20대 국회 임기가 1년 3개월 남지 않아 이번에도 여순사건 특별법안 5개가 자동으로 폐기될 위기에 처하면서 전남동부 지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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