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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애양원 한센인들, 강제로 ‘단종·낙태·이송·격리·노역’[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이웃 ‘한센인’] (3-2) “임신이 된 사실을 알거나 이 안에서 아이를 키우다가 걸리면 바로 나가야 돼. 낙태는 아무도 모르게 하지. 영감하고 내 하고만 알고 의사하고는 살짝살짝 했지."
마재일 기자  |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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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7  10: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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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단종(정관절제)·낙태(임신중절)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여한 여수애양원 한센인은 단종 8명, 낙태 20명 등 총 28명이다. 또, 애양원 입소 한센인들은 외부와의 자유로운 출입이 차단된 채 규율과 통제에 따라야 했으며 집짓기, 도로건설 등의 강제노역도 했다.

◇ 단종수술…“아이를 낳으면 한센병에 전염되고 수술하지 않으면 당장 퇴원”

국내에서 한센인에 대한 단종수술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여수애양원에서다. 이후 1936년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단종수술을 공식 도입했으며, 1940년대 후반 잠시 중단됐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후 격리수용시설 내 가정사(부부 병사)의 조건으로 다시 시작됐다.

애양원에서도 1952년 10월부터 1975년까지 가정사에 입주하는 조건으로 한센인 입소자에게 단종수술을 시행했다. 수술을 거절하는 한센인 입소자들은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수애양재활병원 연보에는 수용자 준수 사항으로 ‘부부 생활을 영위할 시는 정계(정관)수술을 실시한 후 다시 자를 인가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센인권활동백서에 실린 한센인 피해 소송 재판 기록 등에 따르면 강제로 단종·낙태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여한 여수애양원 한센인은 단종 8명, 낙태 20명 등 총 28명이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한센인들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애양원에서 단종수술을 받은 한센인은 권○현, 김○휜, 김○, 김○주, 송○방, 육○덕, 최○식, 윤○현 등 8명이다.

권○현(1936년, 경북 안동)은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 진상조사에서 1959년 이전에 한센병이 발병해 소록도를 거쳐 1959년경 여수애양원에 입소했다. 1961년경 배○심과 결혼하려고 하자 애양원에서 강○원 원장의 지시 아래 강제 단종수술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한센인권변호단 김준우 변호사가 작성한 진술서에도 권씨는 ‘1959년경 여수애양원에 입소했고, 애양원에서 치료 보조일을 하다가 1961년경 배○심과 결혼하려고 하자 애양원에서 강○원 원장의 지시 아래 강제 단종수술을 당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남성 한센인들은 가정을 이루기 일주일 전 의무부로 호출돼 병원 내 외과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병원 직원이었던 강○원 장로와 김○달 장로가 매주 집도했다. 두 장로가 애양원 내 모든 정관수술을 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원장은 입소자 중 손재주가 좋은 자들을 선발해 의학강습소에서 일정 교육을 가르친 뒤 수술실 조수로 삼았다.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의학강습 교육을 받은 박○보, 서○식, 김○천, 조○봉 등이 정관수술을 시행했다. 그 당시 수용시설 내에서의 생활이 외부에서의 생활보다 더 안정적이었기에 한센인 입소자들은 퇴원 자체를 꺼려했고, 입소자들이 가정사를 신청해 원내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단종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강제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이○일, 김○중, 박○희씨 등이 2010년 4월 21일 실시된 사실 면담 조사에서 증언한 것이다.

최○길씨는 2012년 11월 7일 사실 면담 조사에서 “결혼을 하려는 남자들은 누구나 단종수술을 해야 했으며, 아이를 낳으면 한센병에 전염이 된다며 만일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당장 퇴원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나가면 갈 곳도 먹을 것도 없어서 합동결혼식을 하기 전에 외과 수술실에서 결혼한 남자들은 의료보조원(서○식)에 의해 강제로 단종수술을 받아야 했다”는 애양원 내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수술을 받은 내용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한센인 대부분은 장기간 수용생활을 해 일반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자립능력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애양원을 떠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견디며 출산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단종과 낙태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낙태수술…임신 들키면 강제 퇴원, 병원 직원들도 낙태 종용

애양원에서 낙태수술을 받은 한센인은 강○엽, 강○순, 곽○요, 김○순, 김○덕, 김○례, 김○단, 김○자, 문○자, 박○엽, 배○심, 배○덕, 변○덕, 안○순, 유○자, 임○례, 전○례, 정○례, 정○덕, 정○례, 정○례, 최○자, 최○운, 최○임, 최○례, 허○녀, 허○달, 허○순 등 20명이다.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 조사에 따르면 강○엽(1939년, 경남 남해)은 12세경 한센병이 발병해 골방 생활을 하다가 여수애양원에 들어와 1958년경(20세) 임신이 돼 강○원 원장에게 낙태를 당했다. 단종수술 후 1962년 보성농원에 정착해 살고 있는 남편도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다. 한센인권변호단 서중희 변호사가 작성한 진술서에서도 강씨는 ‘19살경에 남편과 만나 우리끼리 서○석 목사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임신을 했고 여기서 살려면 낙태를 해야 한다고 해서 강○원 원장의 진찰하에 낙태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임신한 상태에서 입소하거나 정관수술 후에도 임신을 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 여성 입소자들은 몰래 의학강습소 출신 의료보조원에게 낙태수술을 받았다. 임신한 사실을 들키면 강제 퇴원을 당하므로 임신 사실을 아는 주변 입소자들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도 낙태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은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기록된 애양원 낙태수술 증언이다.

“임신 소문이 나면 안 돼. ○보(의무부의 ‘박○보’)가 했는데, 그때 약을 가지고 했어. 약(낙태주사)을 밑으로 넣어서 그랬는데, 그게 사람들 더 골병 들었어. 애양원 내 남자들이 단종수술을 받고도 여자들이 더러 임신이 된 경우 있었지. 근데 임신이 된 사실을 알거나 이 안에서 아이를 키우다가 걸리면 바로 나가야 돼. 생명을 없애라는 법은 없다보니 낙태는 아무도 모르게 하지. 영감하고 내 하고만 알고 의사하고는 살짝살짝 했지. 박○보하고 영감하고 친구라서 그래가. 우리 형편이 이렇다 하니 하여간 소문나면 그 사람도 쫓겨나니까 멀리 살짝 밤에 나가서 수술을 받았지. 소문낸 사람도 큰일 나고, 의사도 큰일 나! 수술하면 배에 자국 남고 수술하면 의사도 쫓겨나니까 수술을 못 하지. 본인 외에 아무도 몰라 아무도 모르지,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거지.”

한센병은 성적인 접촉이나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으며 유전도 되지 않는다. 1950년 치료약이 개발돼 이미 치유 가능한 질병이었으며 완치되면 흔적만 남는 피부병에 불과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2월 국가정책으로 이뤄진 한센인 단종(정관 절제)과 낙태(임신 중절)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단종과 낙태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라고 했다. 이어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뤄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 강제 이송·격리·노역…철조망 둘러싸여 외부 출입 차단

보건복지가족부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부설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2010년 7월 20일부터 2011년 8월 3일까지 조사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애양원에 입소한 한센인들은 병 치료와 경찰과 단속반에 의한 강제 이송으로 나뉜다. 치료를 위한 자진 입소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찰과 단속반에 의한 강제이송이 주를 이루고 있다.

피해 신고자 김○평씨는 17세 무렵 한센병이 발병하자 마을 주민들의 폭행과 괄시로 골방 생활을 하던 중 경찰 2명에 의해 포승줄로 묶인 채로 애양원에 강제이송 됐다. 애양원에 입소한 한센인들은 외부와의 자유로운 출입이 차단된 채 규율과 통제에 따라야 했다.

김씨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애양원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중간 중간에 4개 정도의 초소가 있어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지켰다. 밤에는 누구인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젊은 사람들이 순찰을 돌았다.

애양원에서는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부첨인(간병인) 생활과 집짓기 등 강제노역이 이뤄졌다. 이○희씨는 애양원에서 1년가량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부첨인 생활을 했다. 부첨인은 주로 질병 간호에서부터 신변처리, 식사보조, 청소, 빨래 등 일상생활을 수발 하는 것이다.

최○진씨 또한 17세에 애양원 남자 독신부에서 생활하면서 노동력을 상실한 환자들을 수발했다. 독신부에는 1명의 방장과 규율부장이 있어 그들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당시 애양원은 부첨인 생활을 하는 사람에 한에서만 입원할 자격을 부여했고 시킨 일을 하지 않을 경우 구타와 폭행을 당하기 때문에 부첨인 생활을 강제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애양원은 한센인들에게 집짓기, 도로건설 등의 강제노역을 시켰다.

※ 자료 참조 : 국립소록도병원자료관, 한센인권활동백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여수애양원 한센기념관, 애양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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