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여수 | 동네 민주주의 그리고 동네 살리기] (1) ‘집행’위주의행정에서벗어나 주민의 눈높이에 맞는 동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으로거듭나기위해서 읍면동장 주민추천제가하나의대안으로떠오르고 있다.

▲ 여수시청. (사진=마재일 기자)

읍면동장 주민추천제, 주민 참여·소통 활발 기대
행정 책임성·연속성 강화…균형발전·권력 분산도

지난해 9월 11일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발표한 ‘자치분권종합계획’은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의지를 담아 주민주권 구현, 중앙 권한의 획기적 지방 이양 등 6대 전략과 33개 추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주민주권 구현을 위한 추진방안 중 하나로 ‘읍면동장 주민추천제 도입’을 명시하고 있다.

읍면동장 주민추천(공모)제는 읍면동장에 공모한 내부 공무원을 주민이 면접 또는 투표를 통해 읍면동장에 추천하거나, 개방형 공모로 공무원 또는 민간 경력자를 읍면동장에 임용하는 제도다.

단체장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주민에게 돌려줌으로써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과 주민주권을 구현할 수 있다. 또 주민의 손으로 읍면동장을 선발하면 각종 정책에 주민 참여와 소통이 활발하고 임기가 보장된 만큼 행정의 연속성과 책임성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추천제는 주민들이 자신의 읍면동의 미래를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의의가 크다.

읍면동은 주민들이 시의 정책을 대면하게 되는 최접점으로 주민 행정 체감과 직결된다. 읍면동장은 시장을 대신해 행정의 능률 향상과 주민 편의를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읍면동장의 역할에 따라 정책의 체감도와 만족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읍면동장의 지역에 대한 이해와 주민들과의 교류는 행정서비스 만족도를 좌우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행정 일선의 책임자를 소리 소문 없이 바꿔 재임기간이 수개월 남짓하거나 1년도 안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읍면동장이 자주 바뀌다 보니 주민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퇴임을 앞둔 일부 읍면동장은 읍면동을 그저 지나가는 자리로 인식하기도 한다. 특히 지방선거 전위대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이장이나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예산권을 가지고 마을 기관·단체를 길들이려 하기도 한다.

▲ 지난 3일 5급 이상 간부공무원 임용장 수여식. (사진=여수시청 홈페이지)

여수시는 그동안 발령된 지 5개월, 또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전보되는 읍·면·동장 인사 때문에 잡음이 없지 않았다. 민선 6기 시전동의 경우 1년 새 동장이 3번이나 바뀌면서 동장의 재임 기간이 5·6개월에 불과했다. 미평·여서·문수·월호·남면·주삼·중앙동 등은 2년 6개월 동안 동장이 4번이나 바뀌어 근무 기간이 평균 7.5개월에 불과했다. 둔덕·광림·국동장 등도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교체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잦은 인사로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고 선거용 인사 논란도 종종 야기되는 만큼 주민 추천제를 도입하면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읍면동장을 주민이 선출하면 주민들의 시정 참여가 보다 강화되고, 권력이 분산되는 등 긍정적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주민들이 지역의 주요 현안과 정책 사업을 논의하고 이를 읍면동 행정이 받아 실현하는 구조라면 행정은 시장 눈치를 보지 않고 주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 또 새로 부임하는 읍면동장 후보자들은 주민들에게 공약을 내고 검증도 받게 되면서 읍면동의 불균형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사실 원도심과 일부 규모가 큰 동은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율촌면, 남면, 소라면, 삼산면 등은 상대적으로 소외를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 여수시 율촌면사무소. (사진=여수시청 홈페이지)

수원·공주·제주도 등 주민추천제 도입 지자체 증가 추세
‘개방형 공모’ 순천시 낙안면장, 마을기업 활성화 등 효과

읍면동장 주민추천제는 2014년 광주광역시 광산구가 전국 최초로 실시했다. 수완동장을 시작으로 5개동에서 동장 주민추천제를 시행하고 있다. 세종시는 전국 처음으로 동장을 넘어서 읍면장 선출까지 확대했다. 중장기적으로 민간인에게도 개방할 방침이다.

이외 수원시, 공주시, 제주도, 울주군 등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시는 한발 더 나아가 2015년 민간인 동장 공모제를 시행해 금천구 독산4동 동장에 민간인 동장을 선출했다.

울산 울주군 삼남면은 지난 6월 25일 주민투표인단 220명이 직접 ‘면장’ 후보를 뽑는 절차가 진행됐다. 면장 후보로 5급 승진 대상자 3명이 나선 가운데 ‘면장 추천 주민회의’는 면장 후보자의 면정계획 발표, 패널 공통질문, 현장 질문, 투·개표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지방자치시대 면장의 역할, 악취 문제, 주민참여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한 질의·응답도 이뤄졌다.

고성군도 경남에서는 처음으로 고성읍민이 직접 읍장을 뽑는 주민추천제를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고 읍면동장의 잦은 교체로 행정의 연속성, 책임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읍장 후보자는 고성군 6급 공무원 중 5급 승진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며, 읍정 운영비전과 특색 있는 발전 공약을 직접 발표하고 추천위원회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선출된 읍장은 임기 2년이 보장되고 예산지원, 근무평가 우대, 직원 추천권 등 각종 인센티브를 준다. 제주도도 내년부터 읍면동장을 주민 추천으로 임명하는 제도를 시범 시행키로 했다. 서울 중구청도 하반기에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1개 동장을 공모할 예정이다.

▲ 여수시 남면사무소. (사진=여수시청 홈페이지)

주민추천제는 방식은 두 가지가 거론된다. 먼저 주민 300~400명이 참여한 주민추천인단이 읍면동장 후보 1·2위를 뽑아 최종 인사권자인 시장에 추천하는 방식이 있다. 시장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1위 후보를 읍면동장으로 임명한다. 또 다른 방식은 주민대표 20~30명이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읍면동장에 공모한 공직자를 면접심사 하는 방식이다. 고득점자 1명을 추천하면 시장이 임명한다.

읍면동장 개방형 공모제를 시행하는 곳도 있다. 서울 강남구는 2004년 8월 주민들이 투표로 공무원을 선임하는 ‘직위 공모 시민심사제’를 통해 명예 퇴직한 역삼1동장 후임자를 결정했다. 순천시는 지난해 낙안면장과 장천동장을 개방형 직위로 공모해 전국 최초로 민간인 낙안면장을 뽑았다. 순천시는 공모 당시 낙안면장은 농가소득을 창출하고 농촌관광을 활성화시키는 임무를 부여했으며, 장천동장은 도시재생과 연계한 마을공동체 활성화, 유니버설 디자인 시범 거리 조성 등의 업무를 제시했다. 장천동장은 적임자가 없어 뽑지 못했지만 낙안면의 경우 면민들 스스로 9개의 마을기업을 만들었고, 낙안면 30년 종합발전계획 수립, 농업 기반의 에너지 자립 농촌 모델 사업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 2019년 주민자치위원 역량강화 교육. (사진=여수시청 홈페이지)

연고주의 등 부작용 우려도…개선 보완책 필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주민 추천위가 선발하는 ‘간선제’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해당 지역 출신으로 혈연·학연 등 사적 네트워크가 든든한 공무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연고주의를 고착화하면서 주민 갈등만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개방형 공모의 경우 행정 전반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어느 정도 뒷받침 돼야 하고, 특정 분야 전문가가 맡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함께 임기 동안 성과에 매몰돼 관계 부서와 직원 간 마찰도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이미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에서 추천자 선발 시 혈연, 학연 등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점도 나오고 있는 만큼 지역 출신 후보자가 해당 읍면동장으로 나설 수 없게 한 ‘향피제’ 도입 등 개선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선택한 만큼 소신껏 읍면동 변화를 시도할 수 있고 추천 과정에서 주민과 약속한 내용을 근거로 갈등 현안이나 읍면동의 오랜 숙원사업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동장과 면장을 거친 여수시의 한 사무관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머리를 맞대고 풀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시장한테 직접 전화해서 읍면동장 교체를 요구한다든지, 선거 때 시장 도왔다고 친분을 과시하며 읍면동장을 좌지우지하려는 자치위원들이 있다”고 지적한 뒤 “주민자치위원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읍면동장이 주민자치위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임명직 읍면동장과 비교해 성과에 대한 부담이 있는 만큼 임기 보장과 예산 특별지원, 직원 추천권, 성과를 낼 경우 승진할 수 있는 기회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추천제 취지에 매우 공감한다. 주민들과 읍면동장이 힘을 합쳐 우리 동네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공동체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여수시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 여수시 주민자치위원 한마음 단합대회. (사진=여수시청 홈페이지)

읍면동장 임명제 ‘독재의 산물’…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우리나라는 1955~56년 읍면동장을 직선제로 뽑았다. 해방과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와 풀뿌리자치를 구현하기 위해 주민 손으로 읍면동장을 뽑은 것이다. 그러나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체제를 강화하면서 임명제로 변경해 버렸다. 4·19 혁명 이후 민주화의 열망에 따라 읍면동장 직선제가 부활됐지만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임명제로 바꿨다. 현행 읍면동장 임명제는 독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읍면동장의 역할도 시대에 맞게 본청의 지시 하달을 수행하는 방식에서 주민참여형 개방 행정으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읍면동이 동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주민들이 읍면동장을 직접 선출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정책을 기획하고 수행하도록 행정의 패러다임 전환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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