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열악한 생활환경에 노출돼온 도성마을 주민들이 마을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직접 유치한 2000억 원대 수상태양광 사업이 여수시의 개발행위허가 반려로 무산 위기에 처하자 분노하고 있다.

▲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수십 년을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석면 슬레이트, 산단에서 날아드는 매연과 분진 등 열악한 생활환경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아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주민들이 또다시 깊은 시름에 빠졌다.

주민들이 축사나 다름없는 마을 환경을 변화시켜보고자 직접 유치한 2000억 원대 수상태양광 사업이 여수시가 개발행위허가를 승인하지 않아 무산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특히 여수시의 반려 처분에 대한 해당 기업의 이의 신청도 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돼 사실상 사업 추진이 무산됐다.

GS건설 2000억 투자해 도성·구암마을 해역에 수상태양광 설치
주민 자립·정주 여건 개선 등 마을재생에 250억 원 지원 약속
시 개발행위허가 반려·위원회서도 이의 신청 부결 ‘무산 위기’
주민들, “여수시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뭐 있나?” 절망·분노

한센인 정착촌인 도성마을 주민들은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국가로부터 강제적으로 격리돼 사회적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행정·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해 도성마을 주민들이 가축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석면 슬레이트, 산단에서 뿜어내는 매연, 분진 등 환경오염으로 고통받고 있는 실태가 알려지면서 행정당국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여수시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특히 도성마을의 석면 슬레이트 면적은 11만㎡가 넘는 것으로 파악돼 충격을 주고 있다.

▲ 수십 년을 분뇨 악취와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석면 슬레이트, 산단에서 날아드는 매연과 분진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 노출되면서 고통받으며 살아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도성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31일 시청 앞에서 정주 여건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타임즈 곽준호 기자)

참다못한 마을 주민 40여 명은 지난달 31일 여수시청 앞에서 ‘여수시는 주민들 모두 죽을 때까지 기다리나!’, ‘주민을 개·돼지로 아는 권오봉 시장은 각성하라!’, ‘여수시는 도성마을 정주 여건 대책 마련하라!’, ‘권오봉 시장은 두통약·수면제 달고 사는 주민 고통을 아느냐!’, ‘아이들 건강권·환경권 방치한 교육청·여수시는 각성하라!’, ‘권오봉 시장! 마을에서 하루만 살아봐라!’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여수시에 정주 여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5일 GS건설(주)과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회에 따르면 GS건설은 2000억 원을 투자해 율촌면 신풍리 도성·구암마을 주변 공유수면에 1단계로 34MW, 2단계로 60MW 약 100ha 규모의 수상태양광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단계 사업은 지난해 9월, 2단계 사업은 올해 5월,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환경영향평가, 공유수면 점사용허가 등의 관련 인허가를 마치고 현재 여수시의 개발행위허가 승인만 남겨 두고 있다. GS건설은 주민 자립과 정주 여건 개선 등 마을재생을 위한 마중물로 발전기금과 세탁공장, 스마트팜, 사회적기업 유치 등 250억 원 상당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수시는 지난 9월 2일 육상부 토지 11필지 중 2필지(1㎡)에 대한 국유재산사용허가서 미제출, 예산내역서 등 구비서류 미비, 구암마을 해변 선박 조사 및 피해방지 대책 미반영 등을 이유로 수상태양광 1단계 사업 개발행위허가 신청서를 반려 처분했다.

▲ 도성마을 모습.(사진=마재일 기자)

이에 대해 GS건설과 도성·구암마을 주민들은 여수시의 반려 처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지난 8월 국유재산사용허가서를 제출했고 예산내역서 등 구비서류도 시의 보완서류 요구에 따라 이미 제출했다는 것이다. 특히 여수시가 반려 이유로 제시한 ‘해변 선박 조사와 피해방지 대책 미반영’의 경우 해당 해역 이용 선박들이 모두 어업권이 없는 불법이고 도성·구암마을 주민소유 선박이 없는 만큼 피해방지 대책 수립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여수시 도시계획개발분과위원회는 지난 1일 GS건설의 이의 신청서 심의를 통해 부결했다. 이에 수상태양광 사업은 무산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여수시는 4일 GS건설이 제출한 개발행위허가 신청서 반려 처분에 대한 이의 신청 기각은 타당하고, 보완사항이 완료되면 재허가 신청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시는 기각 사유에 대해 서류를 보완 기간 내에 제출하지 않았고 구암마을 해역 이용선박 조사 및 피해방지대책 및 이를 반영한 설계도서 등을 제출하지 않아 개발행위허가 신청서 반려 처분은 적법한 행정처분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GS건설 관계자는 “수상태양광 사업성을 재검토해 재접수할지,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 등 불복 절차를 진행할지 등을 내부적으로 검토해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GS건설이 이번 사업을 재접수하거나 불복 절차를 밟을 가능성은 작다. 지난 4월 18일 시행된 ‘해양공간계획법’과 강화된 여수시 관련 조례 등으로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GS건설이 그동안 내부적으로 적극 검토했던 태양광 부유체 조립제조공장 여수 건립도 물 건너갈 위기에 놓였다. GS건설은 제조업체와 협의해 부유체 공장을 도성마을에 지어 마을 주민은 물론 인근 마을 주민들까지 채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발행위허가 승인이 지연되면서 제조업체가 다른 기업과 손잡고 새만금에서 사업을 진행하기로 해 GS건설도 곤란한 처지다. 정부는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 태양광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주택과 축사가 뒤얽힌 도성마을 모습. 회색 지붕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사진=마재일 기자)
   
▲ 도성마을 모습. 폐축사 위에 집이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권오봉 시장, “지역 기여 부족하다…주민 위한 것”
충격에 빠진 주민들, “여태껏 뭐하다가 발목 잡나”
“행정 갑질 횡포”…사업 무산 시 거센 후폭풍 예상

수상태양광 사업과 연계해 열악한 마을 정주 여건을 개선하려던 주민들의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질 처지다. 여수시의 반려 처분 결정에 분노한 주민들은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도시계획개발분과위원회가 이의 신청서를 부결하자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주민들은 조만간 입장문을 내고 여수시를 규탄하는 한편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할 계획이다.

지난 2월 도성마을에서 사랑방 좌담회를 가진 것 이외에는 주민들의 고통과 호소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권오봉 여수시장은 최근 자기 생각을 밝혔다. 권 시장은 지난달 29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도성마을 일원 해수면에 태양광발전소를 건립하면 마을과 여수시에 무엇이 좋은 것이냐”며 “지금 GS건설이 제시하는 것이 내 기대치에 못 미친다. 그러면 (수상태양광 사업을)할 수 없다. 우리 바다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기여를 더 하라는 것이 내 입장이다”고 말했다. 권 시장은 이어 “소액의 지역 기여를 하고 말 것 같으면 태양광이 들어올 이점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 바다만 가려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GS건설이 기여를 더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도성마을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수시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며 여태껏 뭐 하고 있다가 이제야 발목을 잡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결정적인 하자가 있어 수상태양광 사업을 반려 처분한 것도 아니고 기업의 지역 기여가 시장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개발행위허가를 승인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열악한 생활환경을 벗어나 살기 좋은 마을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여수시가 방해를 하고 있다며 개발행위허가 승인을 빌미로 사업을 무산시키는 것은 갑질 횡포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도성마을의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안내 표지판. (사진=마재일 기자)

하태훈 도성마을재생추진위원장은 “주민들이 수십 년을 고통 속에서 사는데도 여수시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뭐냐. 주민들이 다시 한번 일어서겠다는 희망을 품고 발버둥 치는 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으면 되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하 위원장은 이어 “주민들 거의 100%가 찬성하는데 이번 사업이 무산되면 여수시가 책임질 것이냐”며 “국가 관계 기관들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는데 여수시만 소극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도성마을 주민 문미경 씨는 “우리 마을을 살려달라고,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청와대 국민 청원도 올리는 등 어렵게, 어렵게,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여수시가 주민들의 희망을 끝내 외면하는 것 같아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방원빈 도성마을 이장은 “시장님은 도성마을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진정 주민들을 위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진정 주민을 원한다는 시장님은 여태껏 뭐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여수시의 반려 처분 결정에 주민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는 가운데 2000억 대 투자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유치해 2년 넘게 추진해온 수상태양광 사업이 무산될 경우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그동안 투명마을 취급하며 행정 본연의 역할을 망각해온 여수시가 이렇다 할 대책도 내놓지 않으면서 이제야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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