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지원, 고 장환봉 씨 처형은 국가의 폭력 결론 ‘사과’

▲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우리나라에서 LIFE의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칼 마이던스(Carl Mydans)가 찍은 사진.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 당시 반란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아 군사재판에서 사형당한 민간인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 1부(재판장 김정아)는 20일 열린 여순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철도원으로 일하다 군 14연대에 협조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혐의를 받아 사형을 당한 고(故) 장환봉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장 씨가 포고령 제2호 위반 혐의를 받았지만, ‘포고령 위반’이라는 죄목은 적용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 돼 위헌이며, 장 씨의 내란 혐의에 대해서도 내란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복원한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볼 시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고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야 하지만, 수백 명이 며칠 사이에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 사건은 오늘날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데다 피고인의 명예회복 필요성이 절박하다며 무죄 판단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함께 재심이 청구된 여순사건 희생자 2명에 대해서는 소송 과정에서 청구인 2명이 숨지면서 소송 절차가 종료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는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故 장환봉님과 유족께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었음을 뒤늦게 밝히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장환봉씨는 좌익도 아니고 우익이 아니다. 오로지 국가가 혼란스럽던 시기에도 몸과 마음을 바쳐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명예로운 철도 공무원이었다”면서 “70여 년이 지나서야 잘못되었다고 선언하게 되었는데, 더 일찍 명예로움을 선언하지 못한 것에 사과드린다”고 했다.

재판부는 “명예회복을 위해 걸어야 하는 길이 아직도 멀고도 험난하다”며 “여순사건 희생자들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이 사건과 같이 고단한 절차를 더는 밟지 않도록 특별법이 제정되어 구제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 씨는 1948년 10월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내란 및 국권 문란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형이 집행됐다.

2011년 10월 장 씨의 딸 장경자 씨 등 3명이 여순사건 당시 군사재판을 통해 사형을 당한 민간인 3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당시의 기록과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희생자들이 경찰에 의해 불법으로 연행돼 감금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최종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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