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이라 여담 한 마디하고 글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지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던 김강식씨가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수술하기도 어려운 췌장암 3기라고 하니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지역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분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 일찍 발견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동안 시장선거에 전념하다 보니 병이 이렇게까지 깊어진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늘 해답이 뻔한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인지 묻게 되는 오늘입니다. 김강식씨의 빠른 쾌유를 위해 우리가 같이 응원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의 주요기사를 스크린하다 보면 성폭력과 같은 엽기적 사건들이 사회분야 머리기사로 연일 부각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일일이 언급하기도 부끄러운 그런 내용들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 문제의 근원은 아무래도 가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정은 사람을 만드는 공장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공장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시장경제가 건강해지지만, 공장에서 불량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시장경제가 어지러워집니다.

요즘처럼 우리사회가 이렇게 흉악해지고 혼란스러워진 이유도 사람을 만드는 공장인 가정이 부실해졌기 때문이고, 그 가정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한 외고생이 제 엄마에게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남긴 유서에는 단 네 글자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이제 됐어?”
아이가 자살을 한 날은 엄마가 요구하던 성적에 도달한 직후였습니다. 엄마가 원하는 성적으로 올려놓고 “이제 됐어?”하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는 세상을 등졌습니다.

아이의 이 말은 어쩌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릅니다.

제발 아이들만큼은 죽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사그라드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삶을 아무리 부모라 하여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오직 공부만을 외치고 있는 현실에서 인성은 중간에 끼일 자리가 없습니다.

교육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제 학교교육에서 희망을 찾기가 어렵게 됐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학교에 진정한 교육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입시기능밖에 없다는 푸념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학교에서 교육기능이 사라졌냐?”고.

돌아온 대답은 “선생님의 말에 권위가 사라지고, 아이들 또한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오직 공부만 시킬 수밖에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왜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아이들이 가정에서부터 권위를 경험하지 못하고 자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엄마의 권위가 사라지고, 아빠의 권위가 사라진 가정에서 ‘상전’노릇을 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사랑과 존중, 배려와 권위라는 아름다운 가치들을 경험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부를 조금 못하더라도 사랑, 존중, 배려, 권위 이것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은 깨닫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이 이렇게 송두리째 무너지는 가장 큰 원인을 저는 오직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일에만 신경을 써온 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여성가족부에서 우리나라 유치원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한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일찍 들어와, 술 좀 그만 마셔, 담배 좀 끊어” 등등 아이들의 솔직한 답변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아빠, 제발 엄마와 싸우지 좀 마!” 였습니다.

여성가족부에서 이번에는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조사한 결과, 아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다름 아닌 ‘가정의 평화’였습니다. 초등학생의 대답치고는 너무나 삭막한 소망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 가정의 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합니다. 거기에 아이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모습은 곧 가정의 모습이고, 아이에게 가정은 곧 온 사회이고 온 세상입니다.

문제의 자녀 뒤에는 어김없이 문제의 부모가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가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농사를 짓는 일과 같습니다. 농사는 시기에 맞춰 꼭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걸 하나라도 못하고 넘어가면 농사는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의 이성이 여물기 전에 가정에서 아이에게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야 하고, 배려를 가르쳐야 하고,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야 그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사람노릇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가정에서부터 이 과정을 생략한 채, 오직 ‘치열한 경쟁’ 속으로 아이를 내몰다 보니 사회가 삭막해지고, 폭력적인 사회로 변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나는 여름방학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와 존중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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