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상륙할 것이라 예상됐던 태풍이 비켜갔다. 태풍 뒤의 하늘은 청명하다. 이제 가을이다. 하늘도 가을이고 사람이 사는 곳도 가을이다.

길거리에 세워둔 과일 트럭에서 가을이 굴러다니고, 명절을 앞둔 장바구니마다 가을이 빼곡하다.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흠집 난 가을도 있고 상처 난 가을도 있겠지만 가을은 가을이다.

아직 가을산에 가을물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수의 가을색은 지금 벌것다 못해 시퍼렇다. 가을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인데 시민들 가슴에는 벌써 시퍼렇게 가을물이 들어 있다.

이번 비리사건은 이제 스스로 생명력을 지닌 괴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스스로 진화하고 스스로 새끼까지 치는 모습이다.

이제 괴물만 새끼를 치는 것이 아니다. 새끼가 또 다른 새끼를 쳐 계속해서 번식을 하고 있다. 이 괴물에게는 브레이크도 없다. 갈 때까지 갈 모양이다.

지금 주위에 갑자기 한숨을 짓는 사회지도층들이 많아졌다. 그 한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안다.

요즘은 사회지도층이란 말, 참 싫다. 누가 지도층인가? 더 가지고, 더 누리고, 더 이름이 나면 그가 지도층인가.

지도(指導)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목적이나 방향으로 남을 가르쳐 이끎’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 도시의 지도층들이 한 짓이라고는 남을 가르쳐 이끌기 보다는 도덕성이 몰염치로 변화되고, 윤리가 땅에 떨어져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짓들이다.

지도층이 부끄러움을 모르니 우리 서민들만이라도 부끄러움을 가져야겠다. 우리가 선택한 그들이기에 그들에게 던지는 비난의 반이라도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겠다.

우리가 이런 염치라도 회복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한 점 부끄러움 없이는 못 살망정 동네 창피한 줄은 알고 살아야 후세들에게 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온 동네가 창피한 오늘은 태양이 황경 165도를 통과하는 ‘백로(白露)’가 시작되는 날이다.
‘백로’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고, 공기 중의 수증기 때문에 풀잎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날이다.

‘백로’는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귀뚜라미가 목청을 가다듬는 날이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이다. 이제 매미의 시대는 갔다. 모기의 시대도 갔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꺼이 바통을 주고받는 벌레들을 보면서 우리 세상에는 벌레만도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제 여름 매미는 가라.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기를 쓰고 울어대는 매미는 이 가을에 추하다.

자신의 시간이 지나갔는데도 자리를 지키고자 버티는 사람은 독이 제대로 오른 가을모기 같은 존재다. 초가을 밤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인 모기도 자연이 정한 시간은 거스를 수 없다. 가을이 깊어 가면 모기들의 행진도 끝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벌레들도 계절이 주는 기운에 눈치를 살피면서 진퇴를 살피는데 사람도 물러날 때를 모르면 그 뒤만 추해지는 법이다.

돈 받고 비리를 용인한 자. 이제 가라. 비리와 관련됐음을 뻔히 인지했음에도 공천을 한 민주당도 가라. 이 도시에 비리 정치인을 양산한 두 국회의원도 이제 가라.

끼리끼리 짜고 치는, 결국 당신들끼리 오랫동안 벌여왔던 미친 굿판도 이제 거둬라. 어설픈 정치논리로 정당화하지도 말라. 책임지지 못하는 자. 이제 모두 가라.

물을 비워야 컵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고, 이때 비로소 진정한 새로움이 가능한 일이다.

아픔은 대개 슬픔을 낳고 그 슬픔은 우리가 함께 나눔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이 아픔은 슬픔을 동반하기엔 그 뿌리가 워낙 추악하다.

그래서 뿌리를 뽑는 것밖에는 치유의 길이 없다. 무능하면 부패하지를 말든지, 부패하면 무능하지를 말든지 해야지, 무능한 사람들이 부패하기까지 하면 시민들은 도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오랫동안 도시를 병들게 했던 자. 이제 모두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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