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도록 쓸쓸한 가을바람/
밤 깊어가도 잠은 안 와/
저 벌레는 어이 그리 슬피 울어/
나의 베갯머리를 적시게 하나...

'슬픔'이란 이름으로 가을을 노래한 어느 시인의 노래가 많이 어울리는 가을입니다. ‘모기의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니 바람이 바뀌었습니다.

눅눅하고, 질펀하고, 게으르던 바람이 이제는 바람 끝에 각이 생기고 늘씬해지고 동작마저도 재빨라졌습니다.

어제는 춘천에 사는 선배로부터 이러한 문자가 왔습니다...

“여긴.. 완전 가을 날씨야. 서늘하네.. 모든 기운이... 잘 있지? 보고 싶네.. 느그 성이...” 귀여운 선배...ㅎㅎ

모든 기운이 서늘하다는 선배의 문자를 받고 가을 창문을 여니 가을 냄새가 납니다. 가을이 오긴 왔나 봅니다.

비로 시작해 비로 끝난 올 여름과 폭우와 벼락 치는 날을 무사히 지나온 우리는 이제 가을 문턱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어제는 일요일. 휴일에도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하다가 배가 출출한 점심 때가 되었습니다.

“마 부장! 점심은 뭘 먹을까?”

같이 고생하는 마재일 취재부장입니다..
“그냥 자장면이나 하나 시켜 먹죠?”

그렇게 시켜 먹은 자장면은 참으로 맛이 없었습니다. 면은 푸석푸석하고 당연히 있어야 할 돼지고기 한 점이 없었습니다. “맛있냐?”“아니요!”
무엇이나 맛있게 먹는 마 부장이 맛이 없다 하면 그것은 맛이 없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니 변한 것이 어디 한둘일까 만은 자장면의 맛조차도 변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자장면을 먹은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배구선수였던 나는 학교 대표선수로 ‘거북선기 여수시 초등학교 배구대회’에 출전했고, 치열한 예선을 거쳐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드디어 결승전. 1세트를 지고 2세트를 이겨서 마지막 3세트에서 우리는 2세트의 여세를 몰아 14:6으로 앞섰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마지막 1점만 더 따면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우승입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는 한 점 한 점 잃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손발이 굳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14:16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점만 더 따면 우리가 우승인데.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다니요.

우리 6명은 심판의 마지막 휘슬이 “너희들 졌어!”라는 소리로 들리는 순간 그대로 운동장 흙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운 것이 아니라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이번에는 기어코 우승을 해 보자고 너무나 열심히 연습했던 우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운동장에서는 우리도 울고, 감독도 울고, 코트를 빙 둘러싸며 우리를 응원해 주던 많은 학교 친구들도 울었습니다.

당시 우승한 팀에게는 우승기를 줬고, 준우승을 한 팀에게는 유리 상자에 든 조그마한 준우승컵을 줬습니다. 그 준우승컵을 들고 우리는 또 울었습니다. 너무 서러워서...

우리는 땀으로, 눈물로, 흙바람에 이는 흙먼지로 범벅이 된 얼굴로 당시 대회가 열린 여수고등학교 정문을 그렇게 나섰습니다.

다들 풀이 죽어 금방이라도 땅바닥에 달라붙을 것 같은 우리들이 가여웠던지 감독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자장면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에게 자장면을 시켜줬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동안 맛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자장면이었습니다. 다들 가난한 집의 자식들인데 어디 나만 그랬겠습니까.

그 때까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우리들의 얼굴에는 잠시 동요의 빛이 보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자장면을 앞에 두고 그동안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슬픈 표정을 지우고 “우와~” 하는 기쁜 표정을 짓는 것은 방금까지 우리가 흘렸던 슬픔에 겨운 눈물을 심하게 배신하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듣던 자장면을 앞에 두고 그동안의 슬픈 표정을 지우고 기쁜 표정을 짓는 것은 방금까지 우리가 흘렸던 눈물과 슬픔을 심하게 배신하는 것 같은 그런 고민과 갈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자장면을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치웠습니다.
우리의 그 모습에 감독 선생님께서 얼마나 기가 찼을까 싶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얼굴빛에 단풍물이 듭니다... 그런데 맛있는 걸 어떡하라고요...

우리는 그날 자장면만 먹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장면과 함께 그날의 슬픔도 같이 먹었습니다.

자장면 집을 나선 우리 얼굴에는 어느새 슬픔보다 기쁨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색은 못했어도...

아이들이란... 그리고 자장면 한 그릇의 위력이란 이렇게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자장면이 없었으면 지금도 나는 14:6이란 숫자만 보면 가슴을 벌렁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웃지도 못하고.

지금 이 시간 어디에선가 자장면 한 그릇만 있으면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슬픔을 잊을 수 있는 친구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마 부장! 우리 열심히 하자.”
“넵...”

무엇을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 마 부장도 아는 눈치입니다.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서 불어 터진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속없이 웃고 삽니다. 가을 햇살은 이렇게 화창하기만 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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