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총선을 3개월여 앞둔 시점이라 지역의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러한 사람을 만나면 여러 가지를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리운 것이 있다. 바로 사람 냄새다.

우리 시민들이 원하는 리더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 냄새가 폴폴나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냄새가 난다는 것은 기본과 상식을 아는 사람이다.

세상 대부분의 악은 항상 잘나고 똑똑한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팍팍한 사람 말고/해질 무렵/도랑에 휘휘 손 씻고/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찬물에 말아 나눌 낯모를 순한 사람/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생각이 솔굉이처럼 뭉쳐서 팍팍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다 할지라도 그를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 안에 똑똑함은 있을지 몰라도 따뜻함이 없기 때문이다.

따뜻함이 없는 사람이 시민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시민을 감동시킬 수 없는 사람이 성공한 리더가 될 리 없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이, 그리고 살아오면서 주위 사람조차도 감동시키지 못한 사람이 이제 배가 부르니 리더가 되어보겠다고 하면 그것은 안 될 일이다. 권력을 이용해 자기 입으로 더 넣을 인간이기 때문이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사회적 리더가 되겠다고 함부로 튀어 나오지 말라는 얘기다. 리더가 되고 싶다면 자기 주위부터 감동시키고 나오라는 얘기다.

리더 되기가 어디 쉽던가. 얼마 전 영국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스킷 한 개가 230만원에 팔렸다. 도대체 무슨 비스킷인데 한 개에 230만원에 팔렸을까.

영국의 탐험가인 어니스트 섀클턴이 남극탐사 때 식량부족으로 모두가 고통을 겪을 당시 자신이 먹어야 할 몫을 부하에게 내줬던 비스킷이다.

섀클턴은 남극탐사 때 빙하에 갇혀 대원 27명과 634일 동안이나 사투를 벌이면서도 전원 무사귀환의 기적을 이뤄낸 인물이다.

남극점을 160㎞ 앞두고 기상악화 때문에 베이스캠프로 철수해야만 했다. 캠프로 돌아오는 과정은 추위와 굶주림과의 전쟁이었다.

어느 날 섀클턴은 배고파 지쳐 있는 대원 프랭크 와일드에게 자신은 아직 버틸 만하다며 자기 몫의 비스킷을 내줬다.

와일드는 그 비스킷을 먹지 않았다. 그는 일기에 “수천 파운드를 준다 해도 이 비스킷을 팔지 않겠다. 섀클턴의 희생정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비스킷을 먹지 않고 간직했다.

그리고 섀클턴에게 충성을 다했다. 리더가 부하의 충성을 이끌어 내려면 이처럼 자기 몫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자기희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을 한 번도 감동시켜 보지 않은 사람이 리더가 되겠다고 하면 그의 발뒤꿈치를 물어뜯어 버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할 인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한 박영석 대장도 도전정신 못지않게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는 산에서는 극한의 용기와 인내력을 발휘한 사람이지만 동료들에게는 한없이 베푸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어느 날 그를 따르는 비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무조건 내 거 안 챙기면 된다.”

이것은 박영석 대장의 철학이기도 하고 내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리더가 내 것을 안 챙기면 부하들이 힘들어도 견딜 줄을 안다.

죽게 되면 대장이 먼저 죽을 것이고, 행복하게 되면 부하들 먼저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것을 부하들이 믿기 때문이다.

요즘 시민들은 지도자들의 탐욕과 무능에 분노한다. 리더정도 되면 살만큼 사는 사람이다.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리를 이용해서 자기가 더 쳐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에 시민들은 분노한다.

먹는 것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자리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된 것인지 한 번 자리에 올라가면 세월이 흘러도 내려올 줄을 모른다.

우리사회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한번 자리를 차지하면 내려올 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는 거 아니다.

시인 임보의 '우리들의 새 대통령'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내리는/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입고 낭랑히 연두교서를 읽기도 하고,

고운 마고자 차림으로 외국의 국빈들을 환하게 맞기도 하는/더러는 호텔이나 별장에 들었다가도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는/말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는 도서관을 더 크게 세우는/가난한 시인들의 시집도 즐겨 읽고, 가끔은 화랑에 나가 팔리지 않은 그림도 더러 사주는/…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리는/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리고 아, 동강난 이 땅의 비원을 사랑으로 성취할/그러한 우리들의 새 대통령/당신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우리가 기다리는 리더가 어디 대통령뿐이겠는가?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 지역의 리더는 어디쯤 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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