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사진에는 사람의 얼굴이나 자연풍경 등 이런저런 지난날의 모습들이 많이 담겨 있다. 지금의 찌그러진 얼굴과는 다른, 어린 시절의 귀엽고 예쁜 내 얼굴이 보이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의젓하고 반듯한 지금의 친구 얼굴을 만나기도 한다.
또한 쌍계사 계곡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나 피아골 단풍과 함께 저물어가는 내 최근 모습의 사진도 보인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진첩을 펴보면 이런 자연풍경의 배경이기보다 옛날의 금융조합 건물이나 해방 후의 면사무소 간판 등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더 많이 보게 되는데, 나이가 든 사람들은 같은 추억물이라도 정서적인 면보다는 사회적인 면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 또 하나 세대 간의 차이점으로 재미있는 것은 사진 아래에 하얀 색깔의 서투른 추사체 글씨로 적어 놓은 문구들이다.
아버지세대의 사진에는 배경 장소와 날짜만 건조하게 적혀 있는 데 반해 남녀 젊은이들의 사진 아래쪽에는 본의든 아니든 멋스러운 문구가 빠짐없이 붙어 있다.

그 가운데 생각나는 대로 우선 몇 개만 들어보면, 가장 흔한 문구는 맨 먼저 ‘추억의 꽃다발’ ‘희망을 안고서‘ ‘추억은 영원히’ ‘봉선화의 추억’ ‘이별은 추억인가’ 등인데, 표현의 문학적 수준이야 어떻든 여기서 보는 공통어는 여지없는 ‘추억’이다.

이런 문구는 대개의 경우 고객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진관 주인의 독단으로 결정된다. 왜냐면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초등학교 동기동창들의 우정 넘치는 포즈보다 사진 하단에 올려놓은 문구의 문학적 표현 여하에 따라 이 사진관을 찾는 고객의 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옛날 시골에 한문 잘하는 노인은 더러 볼 수 있어도 가슴 저미는 문학적 표현에 능한 사람은 어디 그리 흔했겠는가.

그 시절 그런, 멋진 문구의 전문가는 가정형편상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한 사진관 주인밖에는 없었으니 하는 말이다.
어느 날 나는 친구를 기다리며 우연히 사진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노트북을 뒤적거리다가 깜짝 놀랐다. 문학과는 추호의 인연도 없는 이런 문구가 거기 수두룩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생일이나 졸업 또는 결혼 등 주로 경사 때에 찍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해서 사진관 주인의 가슴 저미는 한 마디 문구가 첨부됨으로써 그 사진은 영원한 기념물이 되어 대대손손 추억거리로 전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고른 이 사진은 이런 추억거리와는 성격이 다른 ‘영정사진’이다. 작고한 뒤의 장례식 제단에 오를 영정사진을 자신이 준비한다는 것은 멋쩍고 서글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부탁하기도 우스운 일이어서 망설이고 있던 중 마침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이 생겨 결정하게 된 것이다.

나는 수필집을 낼 때마다 새 얼굴사진을 가져다 붙인다. 글도 글이지만, 인생역정에 따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같은 값이면 멋진 포즈의 사진을 나도 보고 독자들에게도 보이고 싶은 욕심에서다.

그러나 영정사진은 책 표지에 붙이는 사진과는 달라 장례식장의 제단 정면에 정중하게 모시는 사진이고 보면, 정장에 근엄한 표정의 사진이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에 대한 사전 준비가 없어서 일을 당하고서야 허둥지둥 주민등록증의 여분 사진을 찾아 확대한 것이고 보니 가뜩이나 마음 아픈 자리에 이럴 수가 있겠는가.
오래된 증명사진이어서 고인의 얼굴과는 닮은 데가 별로 없으니 두 번 거듭 서럽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나의 경우 구태여 그런, 멋스러운 볼품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값이면 사후에라도 그런 처량함이 아닌, 좋은 인상을 자식들에게 남겼으면 하는 욕심에서다.
내가 점찍은 이 사진은 2010년 ‘에세이문학’ 겨울호에 게재할 ‘초대작가’ 인터뷰하는 자리에 동행한 어느 수필가가 찍은 스냅사진이어서 그 필름을 가진 수필가에게 염치를 무릅쓰고 확대를 부탁했더니 예쁘고 품위 있는 사진액자까지 만들어서 나에게 선물로 건네주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 자식들에게 보였더니 곁눈으로 슬쩍 보고는 반기는 기색이 아니어서 나는 의아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이라는 말에 모두들 표정이 굳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아버지의 빈소에 들어선 느낌이었던가. 웃는 모습이 아주 멋있다는 찬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서운했지만, 만들어준 분의 성의를 생각해서 조심스레 포장을 해 여수 집으로 가져와 내 서실에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며 바라보고 있다.

옛날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에서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는가. 이는 그 당시 사람들의 도덕적, 사회적 품위에 저촉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선친의 영정사진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식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근엄한 모습의 무서웠던 아버지의 기억만 남아 있다.

내 딴에는 현실을 풍자하는 해학수필을 쓰면서 가다가는 속없이 자신의 글에 웃음이 삐어져 나올 때도 있지만, 점잖은 가풍에 누가 되지 않도록 돌아앉아 입을 가리고 얌전히 웃는다.
그러나 어제오늘 고층아파트 시대를 살고 있는 나는 오랜 세월의 유교적인 점잔과 격식에서 벗어나 등산복 차림의 문상객들과 함께 현대적 작별을 하고 싶어서 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택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서실을 드나들며, 오래되어 변색한 틀니를 앞세워 활짝 웃고 있는 이 영정사진을 바라보는 나는 새삼 사람 사는 재미와 즐거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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