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만에 다시 찾은 신항, 그곳에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







과거 수많은 화물선들로 이곳 신항이 불야성을 이루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이곳 신항은 쌀 등의 곡물과 광물의 하역이 많았다. 이곳에 하역된 화물은 열차와 트럭 등에 실려 전국으로 향했다.

그래서 30~40년 전만 해도 이곳 신항은 전국에서도 꽤나 규모 있는 항구로 대접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항구가 국도 17호 선이라는 폐쇄된 도로와 인근 도시들의 대규모 항만시설에 밀려 서서히 쇠락을 거듭하더니 급기야 역사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의 어렸을 적 놀이터는 바로 이곳 신항이었다. 이곳에서 수영도 하고, 우렁쉥이도 따 먹고, 낚시도 했다.

여름밤이면 동네 사람들은 모두 이곳 신항에 나와 밤바다에 비친 달빛을 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고, 우리 또래 아이들은 쏟아지는 별들을 세면서 별똥별 찾기에 열중했다.



그래서 이곳은 여름밤의 피서지가 되었던 장소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눈앞에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올라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너무 크고, 너무 빨갛게 떠오르는 아침해에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부산과 여수를 오가는 엔젤호의 기점이 이곳 신항이었다. 양 날개를 펴고 수면 위를 날아가듯 달리는 엔젤호의 모습도 어린 우리에게는 신기한 광경 중 하나였다.



이러한 우리의 기억은 항만청에서 어느 순간 이곳에 높다란 울타리를 치고 민간인 출입을 금지하는 순간부터 필름이 끊기듯 사라지고 없다. 그 이후 이곳은 우리의 장소가 아닌 먼 나라의 땅이 되었던 것이다.

그곳을 30여년 만에 처음 방문했다.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30여년 만에 처음 찾은 이곳 신항의 대부분의 시설은 마치 TV 드라마 세트장을 만들어 놓은 듯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수영을 하고, 저 곳에서 낚시를 하고, 저 밑에서 우렁쉥이를 따 먹었는데...” 그리고 불현듯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 오랫동안 이곳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개발하고,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지금처럼 대체항만도 없이 사라지지는 운명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미안했다.



이 좋은 땅에, 이 아름다운 장소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곳이 우리의 보물인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사라지는 이곳 항구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왜 이 모양으로 방치했어!”



여수 시청 앞에 200억을 투자하고도 폐허처럼 방치된 문예회관 건설비용만 이곳에 투자해, 크루즈 항만 하나 만들었으면 오동도와 더불어 요트와 보트가 어우러진 멋진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여수시민들에게 외나무다리를 건너게 했던 17호 국도만 더 일찍 확충되고, 여수까지 고속도로 하나만 건설되었어도 이 항만은 이렇게까지 폐허처럼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주도를 오가던 여객선도 있다가 사라졌다. 교통이 불편해 이용객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오가던 화물선도 있다가 사라졌다. 이것은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 많던 외항선박도 사라지고 없다. 항만으로써 효용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질 않았다. 그까짓 것(?) 없어도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화물선이나 여객선을 유치하려는 노력도, 지키려는 노력도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신항의 모습이 지금까지 우리 여수가 살아온 모습이고 방식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신항은 우리에게 묻는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여수시민 모두에게 던지는 항변이 아닐 수 없다.





박철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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