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였다. 내 전용 수영장은 두 군데가 있었다. 한 곳은 지금 박람회장이 들어선 여수 신항이었고, 다른 한 곳은 오동도 우측에 구등대라 불리는 자갈밭이었다. 지금은 이 두 곳 모두 흔적도 없다. 수심이 20m가 넘는 신항의 수영장은 지금 박람회장이 들어서 버렸고, 오동도옆 구등대의 자갈밭은 지금 매립이 되어 흔적조차 없다.

나는 여름이 되면 이 두 곳의 바다를 번갈아 가면서 흑염소처럼 까맣게 썬텐을 했다. 여름방학의 하루해가 밝으면 우리는 날마다 바다로 나가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온 종일 물속에서 놀았다. 문제는 점심이었다. 신항의 바다로 갈 때는 문제가 없었다. 물안경을 쓰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우렁쉥이며 홍합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그것을 삶아 먹는 것으로 점심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동도옆 구등대의 바다로 갈 때였다. 그곳은 10M 깊이까지 잠수를 하고 들어가도 마땅히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고구마 서리였다. 고구마를 서리해서 페인트 담는 큰 깡통에 삶아 먹으면 그것으로 점심이 거뜬했기 때문이다.

남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자산공원 뒤편에는 고구마밭들이 제법 많았다. 우리는 서리를 하되 완전범죄를 꿈꿨다.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낮은 포복으로 고구마 밭으로 접근해, 고구마 잎과 줄기는 손상시키지 않고, 부드러운 흙속의 고구마만 조용히 캐낸 뒤에, 그 빈 공간을 다시 흙으로 가만히 덮었다.

감쪽같았다.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밭주인조차도 수확을 하는 가을이 되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했다. 그 확신이 우리의 비극을 자초했다. 우리는 여름 내내 고구마밭 둔덕을 한 줄씩 파먹기 시작했다. 자꾸 파먹다 보니 서리를 하면서 느꼈던 아슬아슬함과 죄의식도 사라졌다.

우리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수영을 했고, 점심 때가 되었고, 배가 고팠고, 우리는 고구마 밭으로 향했다. 한참 고구마를 파고 있는데, 뒤에서 우리의 목덜미를 잡는 손이 있었다. 밭주인의 손이었다. 그때 우리는 이미 서리의 수준을 넘어서 고구마 밭을 초토화 시킨 다음이었다. 그 당시 서리는 일종의 도둑놀이였다. 그러나 그때 우리의 고구마밭 서리는 놀이의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그러다보니 우리를 잡은 고구마밭 주인의 표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팬티 하나만 걸친 채, 각자 우리가 훔친 고구마 하나씩을 입에 물고 온 동네를 몇 바퀴나 돌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애나 어른이나 웃었다. 우리는 창피해 죽겠는데.

우리는 포승줄로 묶이지는 않았지만 감히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도망가면 모두 징역을 보내겠다는 밭주인의 협박과 밭주인이 들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몽둥이가 몹시도 우리를 두렵게 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여수에 고구마 도둑 한 명이 잡혔다. 일개 8급 기능직 직원이 76억이라는 국민 세금을 도둑질했다. 수년간에 걸쳐 관련 문서를 위조하거나 허위로 작성해 도둑질을 했다. 이게 지금의 첨단시대에 가능한 일일까. 가능했으니 일어났겠다.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 도둑은 훔친 그 돈으로 마누라에게 벤츠 승용차를 사주고 자신은 에쿠스를 몰고 다녔다. 장인과 처남과 처형에게는 대형 아파트 한 채씩을 사줬다. 처남들에게는 베라크루즈를 비롯한 최고급승용차 한 대씩을 선물했다. 처갓집이 좋았나보다. 말단 기능직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한 짓이다. 그런데 그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여수에서 벌어졌다.

오현섭 전 시장이 온갖 추잡한 비리로 구속된 이후, 비리 도시라는 오명을 덮어쓴 여수다. 그 창피함을 불식시키기 위해 우리 시민들은 박람회 때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런데 몹쓸 도둑놈 한 명이 지금 우리의 마음을 할퀴고 있다. 처음에는 횡령한 돈이 19억 원 정도로 밝혀졌다. 그 액수에 우리는 경악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76억 원까지 늘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리가 이쯤해서 멈출까. 멈출 것 같지가 않다. 고구마 줄기처럼 죽죽 뽑으면 죽죽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80억에 가까운 돈이, 단기간도 아니고 다년간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횡령되었다는 것은 오롯이 상급관리자의 관리 소홀과 부실한 시스템의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저기 연기 나는 곳이 많다. 아프지만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해야 하는 까닭이다.

인간이 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인간으로서 차마 욕심 부려서도 안 되는 선이라는 것이 있다. 그 선이 무너지면 사람도, 사람 되기를 포기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노동판의 근로자들에게 미안하다. 거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손님 대신 파리만 휘휘 쫓는 노점상들에게 미안하고, 푸성귀 몇 바구니 앞에 놓고 찬바람과 마주하는 우리 어머니들에게 미안하다.

한번 아플 때, 야무지게 아프고 말자. 철저히 파헤쳐서 갈 때까지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국민들에게, 시민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책임 문제는 그 뒤에 다시 논하도록 하자.

초등학교 3학년 때, 훔친 고구마를 입에 물고 온 동네를 돌게 했던 그때의 밭주인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때 밭주인이, 우리의 눈에 눈물을 쏙 빼놓지 않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다면, 나는 지금 더 큰 고구마 도둑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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