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능소화가 곱다. 바람결에 능소화 한 송이 곱게 떨어진다. 여름이 깊어간다는 의미다.

바람결이 고우면 유월이요 바람결이 그리우면 칠월이요, 이렇게 노래하듯 세월이 바람으로 지나간다.

엊그제 봄이더니 어느새 칠월이다. 세월 참 빠르다. 오늘은 가만히 내 나이를 짚어 본다. 적지 않은 나이다. 쉰이 넘었으니 이제 다 컸다. 예전에 내가 말하던 그 나이의 그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 내 속에는 눈을 끔벅거리고, 자주 놀라고, 여전히 불안해하는 남자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묻는다. “나잇값은 하고 사나?” 글쎄다.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결국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나잇값하고 살기’가 아닐까. 엊그제 봄이었는데 어느새 칠월이듯 세월 참 빠르다.

어제는 그제보다 빨리 지나갔고, 오늘은 어제보다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한달음에 지나온 세월의 모퉁이를 돌면 눈앞에 나타날 풍경들이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탄님의 ‘나이 값’이란 시가 있다. 꼭 나보고 하는 소리 같다.

부탁만 하고 다니고 / 핀잔이나 줏어 먹고 / 하는 일마다 오해나 받고 / 하기는 했는데 신통치 않고 / 말이 많다는 말이나 듣고 /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는 멀고 / 지적지적 뒤처져 헐떡거리고...

돈 버는 재주도 없고 /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책장을 펴놓고 / 시간이나 보내고 / 그러면서도 친구나 하늘은 좋은 / 이 나이의 값은 얼마냐?

내 나잇값은 얼마일까? 나를 시장에 내놓으면 나는 얼마짜리 인생일까?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젊고, 아니라고 하기엔 내 자리가 너무 무겁다.

오바마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미국 대통령을 했으니 젊다고 하는 것도 조금은 겸연쩍다.

아아, 젊었을 때 조금 더 닦아놓을걸, 그런 후회도 든다. 젊었을 때 기반을 닦아 놓지 않으면 나이 들어 초라한 인간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조금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주위에 보면 대책 없는 어른이 참 많다. 주위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 사회를 병들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른 중에서도 이렇게 대책 없는 어른이 많은데 아이들 중에 왜 대책 없는 아이들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시끄러운 까닭은, 그리고 지금 대책 없는 아이들이 많은 까닭은, 대책 없는 어른들과 나잇값도 못하는 우리 어른들 탓이 아닐까.

우리 사회는 진정한 어른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그가 누구든 끌어내려 패대기를 쳤기 때문에 힘들 때면 찾아가서 상의를 드릴만한 어른 하나 남겨놓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하겠다. 자라나는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사람이 늙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생의 갈림길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노인과 어른이 되는 갈림길이다. 지금 내 나이가 딱 그 나이다.

노인은 노력하거나 훈련하지 않아도 세월 속에서 절로 노인이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단히 내 자신을 가꾸고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나잇값을 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삶인지 묻고 또 물어야겠다.

나이 들어 노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어른이 될 것인가? 그 결단은 빠를수록 좋겠다. 세월은 지금 이 시간에도 마구 달려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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