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학의 석좌교수이자 ‘명의 충돌’의 저자인 새뮤얼 헌팅턴이 1960년대의 자료를 살펴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프리카의 가나공화국과 한국이 1960년대에 거의 똑같은 수준의 나라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두 나라의 GNP는 물론이거니와 공업수준이나 생산품도 거의 비슷했고, 심지어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 받는 액수까지도 비슷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고 헌팅턴 교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똑같았던 두 나라가 40년 후에는 이렇게 달라졌는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한국은 그로부터 40년 후에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의 부강한 나라가 됐는데, 가나는 왜 한국의 15분의 1도 안 되는 나라로 머물고 있는지.

그 이유를 조사하다가 헌팅턴은 그 답을 두 나라의 문화에서 찾았습니다. 한국민은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고, 교육에 열정이 있고, 규율이 있고,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는데 반해, 가나에는 이 같은 문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는 ‘문화가 말해 준다(Cultures Count)’라는 그의 논문 서두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경제수준이 가나와 같았던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내부로부터 “열심히 살아보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고달파도 한 번 해보고자 하는 열의가 있었고, 긍정적인 생각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가슴 속에 그러한 감정들이 남아 있느냐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그렇다”하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정부를 보아도, 국회를 보아도, 그리고 사회 어디를 보아도, 우리가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분야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한 국민들은 앞으로 가고 싶은데 높으신 양반들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논하는데 바쁘고, 지난 과오를 사과할 줄도 모르고, 통합보다는 분열을 부추기는데 바쁘고, 내 책임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힘을 쏟는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사회는 바르고 떳떳한 것보다 비뚤어지고 뒤틀리고 악의적인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선한 다수의 목소리는 묻히고, 목소리 큰 소수의 목소리가 사회를 지배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일 수 없고, 그러한 사회가 좋은 사회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이치가 도시라고 다르겠습니까.

이것을 하려면 저것이 발목을 잡고 저것을 하려면 이것이 발목을 잡는 사회. 그래서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어찌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궁시렁대는 사이에 어느덧 시월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날씨도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한 해의 끝자락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 년 삼백 예순 다섯 날 중에서 삼백 날이 빠져 나간 달력은 잎진 나뭇가지처럼 허허롭습니다.

어제는 운동화가 다 떨어진 어느 아이를 만났습니다. ‘세상에 아직도 너 같은 아이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웃고 있는데 나는 울고 싶었습니다.

잘난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움질에 열중할 때, 어디선가 어느 아이는 이렇게 헐벗고 있다는 사실에 아팠습니다. 아이만 그러하겠습니까. 굶주린 노인은 왜 없겠습니까.

잘난 사람은 자신들의 배가 부르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생각이 없나 봅니다. 그저 자신들 입지 세우는데 바쁜 모습에 화가 납니다.

권력이 생긴 즉시 지혜와 인격이 생기고, 부가 생긴 즉시 교양과 품위가 생겨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과거에 그랬지요. 사림파, 훈구파, 남인, 북인, 동인, 서인… 소속의 사람들 말입니다. 제사상에 과일과 고기를 올리는 순서를 가지고도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 말입니다.

아픈 과거였습니다. 요즘 그 사람들 생각이 납니다. 지금의 모습이 과거 옛 선인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망각한 국가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는 법입니다. 비록 버리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일망정 우리가 그 아픔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앞서나간 사람들이 말귀를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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