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이었습니다. 신기동에서 교촌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가 섬마을을 찾아가 그곳 아이들에게 바삭바삭한 치킨을 튀겨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섬에 사는 아이들이 언제 바삭바삭한 치킨을 먹을 수 있겠냐는 것이 그 친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날을 잡아서 치킨 튀기는 트럭을 배에 싣고 찾아간 곳이 금오도라는 섬이었습니다. 여수항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섬입니다. 그 섬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섬이었고, 비렁길로도 유명한 섬입니다.

제가 굳이 그 섬을 택한 까닭은 그곳에 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정부의 정책이 도서지역에 있는 학교들을 통폐합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서 신입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 학교도 폐교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학교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곳에서 치킨 150마리를 튀겼습니다. 6명이서 하루 종일 튀겼습니다. 그렇게 따끈따끈하게 튀긴 치킨을 그곳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전교생들에게 실컷(?) 먹였습니다. 그 치킨을 들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이 얘기를 꺼내는 까닭이 있습니다.

바로 엊그제 그 여남고등학교에서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겨우 45명밖에 되지 않는 학교입니다. 학원도 없는 이곳에서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날 친구가 운동장에서 치킨을 튀기고 있는 동안에 저는 그 학교의 전교생을 모아놓고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이번에 서울대에 합격한 진성일군의 얘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2학년이던 진성일군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느 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니?”
“예! 목포 해양대나 부산 해양대입니다.”

그리고 성일 군은 그 학교를 졸업하면 마도로스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긴, 그는 태어나 자랄 때부터 늘 바다를 보고 자랐고, 오고가는 고깃배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의 꿈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이 학교에 계신 선생님이 변태수 교장선생님과 한경호 선생님, 김은진 선생님, 그리고 제가 이름은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훌륭한 선생님들이 이 학교에 계셨습니다. 뭔가 해보려는 의욕이 강한 선생님들로 저는 기억합니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 어찌 한두 선생님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제가 이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는 까닭은 이분들의 노력을 제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 8월에 있었던 KBS 1TV ‘도전 골든벨’의 추석특집에서 진성일 군이 당당하게 골든벨을 울렸습니다. 그런데 그 ‘도전 골든벨’을 이 학교로 유치하기 위해 이곳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도 제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노력덕분에 숨은 진주 같던 진성일군이 골든벨을 울릴 수 있었고, 거기에 진성일군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실력들이 더해져서 이번에 서울대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선생님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3학년 전교생이 11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서 어찌 서울대에 진학할 수 있었겠습니까.

논에서 자라는 벼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라는 것처럼, 학생들도 선생님들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몸과 마음이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여수는 교육 때문에 늘 가슴앓이를 하는 도시입니다. 연말이 되면 늘 같은 가슴앓이를 하는 도시이지요.

그런데 여수에 있는 고등학교 교장선생님들께서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중학교의 우수한 아이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외지로 많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대학교 입시 성적이 좋지 않다고.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좋은 학교는, 학생들의 실력이 원래부터 탁월해서 교육적 성취가 높은 학교가 아니라, 학교의 노력과 선생님들의 노력에 의해서 학생들의 성취가 그 전보다 높아진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좋은 학교는, 지금처럼 우수한 인재가 많이 빠져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고 말하는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와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을 받아들이고도 더 높은 교육적 성취 수준을 내거나, 취약한 지역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수에서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입니다. 그러한 까닭은 좋은 학교를 만들지 않고는 지역의 인재 유출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섬에 있는 여남고등학교가 이번에 작은 메시지 하나를 우리 지역에 던져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섬에 있는 작은 학교도 하는데 도시에 있는 큰 학교가 못할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를 가르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지역 내에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의 존재 유무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역에서의 교육은 더 이상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역에서의 교육문제는 인구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와도 직결되고, 경제와도 직결되고, 문화와도 직결되고, 그밖에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교육문제만큼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냐고 누누이 강조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여수에 좋은 학교를 만드는 일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적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어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우리 도시가 가진 모든 역량을 교육 쪽에 모아보는 것도 도시가 강해지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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