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가 속절없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들리는 소식이라곤 박람회장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했던 아쿠아리움 건설에 참여할 민간기업이 없다거나, 숙박시설의 건설에 참여할 민간기업이 없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 연이어 들린다.
어려운 경제여건만 탓하기에는 너무 궁색하다. 민간기업들이 여수에 투자를 외면하는 이유는 박람회 이후의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다.

기업은 수익을 먹고 산다. 3개월의 박람회 개최 기간 이후에 기업들은 더 이상의 수익을 낼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 투자를 외면한 기업들의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박람회유치가 결정된 이후 우리 도시가 가장 발 빠르게 준비했어야 했던 것도 박람회장 외에 우리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컨텐츠 개발이었다.
우리는 이를 너무나 소홀히 했다. 박람회개최가 확정된 이후 근 1년 4개월 동안 우리 도시는 이를 위해 이렇다하게 준비한 것이 없다.
‘우리가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수많은 민초들의 외침이 있었지만 정작 일을 챙겨야 할 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치고, 앞으로의 준비라도 잘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들 소귀에 경 읽기다.

우리 도시를 찾는 800만명의 관광객들에게 우리 도시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다. 시민들은 그렇게 할 힘이 없고, 정치인들은 온통 잿밥에만 눈이 멀었다.
정몽구 현대그룹회장이 박람회 유치위원장으로 많은 고생을 했지만 유치가 확정된 이후 그를 제대로 예우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김재철 동원그룹회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박람회유치는 자부심이었겠지만 이들 기업이 우리 도시에 투자했다는 소식은 없다. 인연이 인연으로 연결되지 않는 모습이다.
정치인을 구분하라고 하면 정치가와 정략가로 구분한다. 정치가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인이고, 정략가는 다음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가의 범주에 속하는 좋은 지도자를 그리 많이 만나지 못했다. 반면에 정략가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수도 없이 많이 보아 왔다.
정략가는 입으로는 도시발전과 시민들의 복리증진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우선시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다음 선거만을 의식하는 단체장들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한 몇 개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축제나 주민 위안잔치와 같은 행사를 지나치게 많이 벌이고, 사시사철 행사장만 쫓아다닌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대도시의 광역단체보다는 기초단체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지역에 정치꾼만 넘쳐나고, 정작 일꾼이 없다는 푸념이 들리기도 한다.

두번째는 인사와 공사에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만 열면 적재적소를 강조하면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승진인사와 보복성 전보인사로 조직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사무관, 서기관 승진에 억(億)대의 금품이 오간다는 믿기지 않는 풍문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상식이 몰상식에 의해 멱살 잡히고 있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볼 때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대다수 단체장들은 주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일을 잘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과욕을 부리지 않더라도 재선이나 3선 고지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른 바 현직의 프리미엄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매사를 다음 선거와 결부지어 무리수를 두면 현직의 이점은 곧바로 약점으로 변하는 법이다.

‘우리도시, 이게 뭡니까?’하는 시민들의 볼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또 ‘박람회장 시설에 민간기업이 투자를 외면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영 기분이 안 좋다. 다들 입 밖으로까지는 내뱉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심으론 이심전심일 게 뻔하다.

책임질 자들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호령만 하고 있는데, 죄없고, 힘없고, 그냥 따라가야 하는 서민들만 서럽다.
무엇이 우리 시민들을 행복하게 할까. 그렇게 큰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러기 아빠로 홀로 남아 소주잔을 앞에 두고 꺼이꺼이 울던 친구에게는 가족의 따뜻함이 행복의 전부이듯 크고 거창한 것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세상은 돌아가고, 도시는 돌아간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에게는 이랬거나 저랬거나 불편함도 적다.

문제는 서민이다. 집안에 며느리 하나 잘못 들어오면 온 집안 식구가 불편해 지듯이, 우리 도시에도 요즘은 무엇하나 기분 좋은 이야기가 없다.
이번 주도 ‘희망적인 얘기 좀 하라’는 시민들의 성화가 빗발칠 듯하다. 그러나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절망을 제거해 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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