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만 먹고 살 수 없어서 한 달 동안 바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사이 칼럼도 쉬었네요.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무슨 일 있냐고…

지역에서 지역신문을 한다는 것은 희생이고 봉사입니다. 특히 제대로 된 신문 하나 만들어 간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난 3일 동안 꼬박 밤을 새워 일을 마친 뒤, 오늘은 마당에서 들리는 새소리의 소란스러움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상쾌함입니다.

그동안의 일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몇 분의 지인이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하나같이 여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말들을 한 보따리씩 쏟아놓고 갑니다.

차기 시장이 누가 될 것이냐, 여수는 지금 어디로 가느냐, 나름의 생각과 판단들을 어지럽게 쏟아 놓고 그들은 바람같이 사라집니다. 나는 지금 그 ‘어지러움’을 하나씩 주워 담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는 잠시 목포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근 10여년만의 일입니다. 목포의 눈부신 발전에 놀랐습니다. 널찍한 10차선 대로변에 줄지어 늘어선 고층빌딩의 모습과 신축중인 건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목포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여수는 목포뿐 아니라 이미 여러 가지 면에서 인근 순천시에도 주도권을 빼앗긴지 오래입니다. 순천에 집을 두고 여수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여, 전남 제1의 도시이고 경기가 좋았던 과거의 화려한 명성에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안주해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오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였습니까. 엑스포가 개최되면 여수가 개벽이 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또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의 정치는 시민들에게 신바람을 불어 넣고 있습니까?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또 시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까.

박람회 숙박시설이 들어설 덕충동 일대는 박람회 개최가 확정된 게 언젠데, 지금도 여전히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경도에도 바람결에 나부끼는 깃발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여수시의 안이한 태도와 철학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오고 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해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사업을 추진하면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청계천 주민들을 4200여 차례나 만나 그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했다는 얘기는 우리에게 차라리 전설입니다.
지도자는 지역 내 민감한 분쟁이 발생하는 곳이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찾아가 그들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그들을 이해시키고,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새로이 투자를 하고자 하는 모든 주체들이 주민들의 민원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신속하게 투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무이기도 합니다.
민감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하들만 내세우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이 아닌 것입니다. 좋은 일은 부하들에게 그 공을 돌리고, 나쁜 일은 지도자인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를 가져야 부하들의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곧 문제가 발생하면 부하들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도자는 어떤 경우에도 시민들 곁에, 공무원들 곁에 서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또 공무원들이 안심하고 자기의 직분에 전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새삼 여수의 미래에 대해서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있겠습니다. 우리 도시의 장기 비전은 무엇입니까. 엑스포 이후에 펼쳐질 우리 도시의 큰 그림은 또 무엇입니까.
이것은 곧 도시를 이끌어가는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과문해서인지는 몰라도 시민들 가슴을 울리는 철학과 도시의 비전을 담은 큰 그림은 아직 선명하게 보이질 않습니다.

지난 세월 내내 우리 도시에는 철학도 가치관도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빈 깡통 소리만 요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오늘입니다.
빈 깡통에 화려한 껍데기를 걸쳤다고 해도 깡통은 깡통일 뿐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스스로 화려하다고 착각하는 모습은 없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시민 모두의 성찰을 전제로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늦기는 하였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할 때가 아닙니다. 긴 호흡과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도시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함께 구상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도시는 도시의 ‘완성’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완성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에 목적을 두는 도시로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즉흥적으로 펼쳐지는 단기적 사업에 매몰되어, 좁은 틀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논의의 지평을 넓혀 이 도시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철학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지도자의 고민입니다. 지도자는 행정의 중심에 ‘내’가 아닌 ‘시민’을 놓아야 합니다. 더불어서 시민을 위하는 정책과 이상적인 도시의 형태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도시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지는 오직 이 도시를 이끌고 있는 리더의 철학과 지도력에 달려 있습니다.

철학의 빈곤. 이 도시의 리더를 향한 가장 뼈아픈 비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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