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도시, 걷기 좋은 도시 (2)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아 보행자 사고가 잦은 도로에 대해 보행자 통행을 우선하고 운전자의 주의 의무를 대폭 강화한 법이 시행에 들어갔으나 여수시는 사실상 준비에 손을 놓고 있다.

여수시 교동오거리 모습. 보행자가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자료=마재일 기자)
여수시 교동오거리 모습. 보행자가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자료=마재일 기자)

지자체장 상가‧주택가 등 지정해 안전 보강 가능
어린이‧장애인‧노인 등 약자 중심·장기 계획 필요
차도‧보도 현황 조사 필요…행정 적극성이 관건
여수시 아직 업무 분장도 안 되는 등 서로 핑퐁

보행자 보호 의무 강화를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지난 12일부터 ‘보행자 우선도로’ 제도가 도입되면서 시행에 들어갔으나 여수시는 보행자 우선도로 지정 관련 전담 부서도 없는 등 사실상 준비에 손을 놓고 있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 가운데 보행자가 차량보다 우선하는 길을 의미한다. 길이 좁아 보도‧차도 구분 없이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여 다니는 상가지역‧시장길‧주택가‧통학로 등이 대상이다.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되면 보행자는 도로의 모든 부분으로 통행할 수 있다. 차를 피해 갓길로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이 도로에서 보행자는 고의로 차량 진행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운전자는 사람이 있을 경우 무조건 서행하거나 정지해야 한다.

지자체장은 보행자의 안전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이면도로 등을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하고 차량 속도를 시속 20㎞ 이내로 제한하는 등 안전표지나 속도저감 시설 등을 설치할 수 있다. 보행자 통행을 방해하거나 보호 의무를 위반하면 4만 원의 범칙금과 벌점 10점이 부과될 수 있다. 정부는 대구 5곳, 대전 3곳, 부산 13곳 등 시범 사업 대상지 21곳을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보행 사망자는 4.1명으로 OECD 국가의 평균인 1.4명에 비해 3배 정도 높다. 민식이법 등으로 스쿨존 교통안전을 강화하고 도심 제한속도를 50㎞로 낮췄지만 보행자 교통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19년 기준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38.9%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보행자 사망 사고 가운데 약 75%는 차도와 인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 발생했다.
 

여수시 진남상가.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 진남상가.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 진남상가.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 진남상가.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지역 보행자 교통사고 최근 3년간 느는 추세
스쿨존 내에서 사망자 없지만 어린이 83명 부상
지난해 여수 고령 보행자 사망 13명, 부상 261명


TAAS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koroad.or.kr)에서 2019~2021년 여수지역 보행자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2019년 339건의 사고 중 사망 9명 부상 347명, 2020년 281건의 사고 중 사망 14명 부상자 281명으로 나타났다. 2021년 248건의 사고 중 사망자 12명 부상자 247명이 발생했는데 여기에는 한재사거리에서 승용차 탁송 차량이 횡단보도를 덮쳐 숨진 노인 등 5명이 포함됐다. 여수경찰은 올 상반기 여수지역 보행자 사망사고는 현재까지 1명(술에 취해 차로에 있다가 차량에 치여 사망)이라고 밝혔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5년간(2017∼2021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난 12세 이하 교통사고 중 50.4%가 ‘횡단 중 사고’로 나타났다. 지난해 여수지역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68건의 사고 중 사망은 없지만 83명의 어린이가 부상을 당했다.

전국적으로 고령보행자 사망 비율도 높다. 교통사고분석시스템의 2021년 교통사고 정보를 보면 고령 보행자(65세 이상)가 전체 보행 사망자 59%를 차지한다. 여수지역 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238건의 사고 중 사망자는 13명, 부상자는 261명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사진=마재일 기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사진=마재일 기자)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데도 지나가는 차량. (사진=마재일 기자)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데도 지나가는 차량. (사진=마재일 기자)

보행자 우선도로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어린이는 물론 갈수록 고령인구가 늘고 있는 여수시로 봤을 때 보행환경 조성 정책 차원에서 보행자 우선도로의 필요성이 시급해 보인다.

그동안 우리 교통문화가 보행자보다 차량 통행을 우선해 온 것이 사실이다. 도로는 폭이 좁고 보행자와 차량이 함께 다니는 이면도로도 많다. 더욱이 좁은 도로에서 불법 주정차, 불법 적치물들도 보행자 안전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양쪽에 보행로가 없고 갓길뿐인 도로도 허다하다. 보행로가 있다 해도 1m가 안 될 정도로 비좁은 곳도 있다. 차도와 인도를 함께 사용하는 곳도 적지 않다. 진남상가와 흥국상가만 봐도 차량과 사람이 섞여 혼잡하다. 차들끼리 교차 통행이 안 돼 후진하는 경우도 있고, 걷는 사람은 엉킨 차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움직이기도 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위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일부 초등학교는 여전히 통학로에 어린 학생과 차량이 함께 왕래하는 곳이 있다.
 

여수지역의 아파트 내 도로를 아이들이 걸어가고 있다. 인도가 있지만 차량들이 주차하고 있어 무용지물이다.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지역의 아파트 내 도로를 아이들이 걸어가고 있다. 인도가 있지만 차량들이 주차하고 있어 무용지물이다. (사진=마재일 기자)

보행자 안전 강화를 위해 보행자 우선도로 지정, 시행의 시급성이 요구되지만 여수시는 아직 업무 분장도 안 되면서 사실상 준비에 손을 놓고 있다.

여수시 교통과 관계자는 “(우리 부서는)도로가 완공되면 횡단보도나 신호등, 표지판 등의 설치를 담당하고 있다”며 “보행자 우선도로 지정 업무는 도로시설관리과에서 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도로시설관리과 관계자는 “노인보호구역이나 어린이보호구역 등의 업무를 교통과에서 하고 있다”며 “전담 부서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아 내부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여수경찰서 관계자는 “법이 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홍보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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