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비도 참 많이도 온다. 장마가 오기도 전에 예선전이 아닌 본선(?)을 흉내 내는 듯한 비가 자주 내리더니 우기(?)가 채 끝나기 무섭게 아열대 기후를 연상케하는 소낙비가 늦은 밤, 이른 새벽에, 잊어 먹을 만하면 어김없이 출근 길 도로를 적셔 놓는다.

어제는 태풍 무이파까지 제대로 여수를 섭렵하더니 맑은 하늘에 뒷바람의 여운까지 남겨 놓는 걸 잊지도 않는다.

얼마전 인터넷으로 오래된 서적 하나를 주문해서 읽었다. 분명히 과거에 읽었던 책이긴 한데, 어느 글에선가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한 칼럼 비슷한 걸 접했는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퇴근해서 어디엔가 있으려니 하고 뒤져 봤으나 허사였다. 그 책은 올해에 작고한 박완서님이 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였다.

대학시절 읽은 걸로 분명히 기억하는데 대강의 줄거리는커녕 소설의 윤곽조차도 빛바랜 수묵화처럼 흐리기만 했다.

거의 이십여 년 전 치과대학을 다니며 잦은 시험, 벅찬 수업, 과제와 자정까지 거듭되는 실습 등으로 지쳐갈 즈음 다른 일반대학 학생들이 전공서적 외에 소위 베스트셀러라고 지칭되는 책을 끼고 캠퍼스를 다니는 모습을 부러워하다 늦은 방학이 시작되면 소원풀이 하듯 그 당시 친구들과 익숙한 약속장소였던 시내서점에 한 시간 미리 가서 서점 주인의 눈을 의식하며 이 책, 저 책 공짜로 훑어보다가 주머닛돈을 헤아리며 사서 보았던 책들 중의 하나로 기억된다.

편리한 세상에 서점도 가지 않고 주문한 지 하루 만에 배달된 책을 받는 기분이 무언가 빠진 듯하긴 했으나 한 장 한 장 읽는 내내 과거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읽었을까하는 반성이 들 정도로 새로웠고 그래서 더욱 아끼며(?) 읽었다.

아니 되새김질이 딱 맞는 비유일 지도 모른다. 이 글은 박완서 작가의 자서전적인 성장기와 같은 소설로서 일제 말기에서 한국전쟁까지 복잡한 시대에 유년기에서 성년기 초입을 보내면서 개성 근처 송도 박적골과 서울을 오가며 살면서 보고 느낀 풍경을 낡은 앨범과 일기장을 꺼내 보는 듯한 감동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이 소설 중 간간히 저자의 시골 고향에 지천에 널려 있던 ‘싱아’를 서울에서 발견할 수 없음을 짧지만 궁금해 하며 그리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작가는 고향 시골에서 동무들과 싱아의 줄기대를 까먹으며 느꼈던 시큼한 맛을 다시 느낄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사라진 싱아에 작가 나름의 여러 당시대적인 의미를 간접적으로 부여하는 듯했다.

요즘 우리 여수는 엑스포 준비로 한창이다. 아니 정신없다는 표현이 맞을는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벌여놓은 공사내용과 진척상황을 알리는 기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급해진다.

가뜩이나 제 때에 공사가 끝나겠냐는 우려가 많은데 어제의 태풍으로 피해라도 없었는지 걱정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여러 이유로 도시가 파헤쳐지고 개발되는 것은 좋은데, 그 와중에 우리 여수에 없어져서는 안 될 ‘싱아’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걱정말이다.
후대에 물려 줄 소중한 우리 여수만의 독특한 자연환경이나 도시의 생명줄인 물을 머금은 숲이나 하천, 저수지등을 허물고 개발할 때 한 세대, 아니 두어 세대가 지난 뒤에 다시 없어진 ‘싱아’를 찾아야겠다고 하지 않을는지 말이다.

이는 지역 살림을 공적으로 맡고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공동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여론에 쫓겨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다 챙기기 힘들다. 결정되면 앞만 보고 달려도 이래저래 부족한 게 세상일이다. 그래서 조금은 미안하더라도 간섭할건 간섭해야 한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간섭해야 한다. 관심을 가질 때까지 …….

어제는 태풍예보로 나들이도 못간 탓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엑스포 홍보관을 둘러 봤다.

2년여 전에 처음 갔을 때와 조금 달라진 내부 모습도 있었지만 더욱 눈에 띄는 건 홍보관에서 내려다보이는 엑스포 전시관 공사현장 모습이었다.

닦아진 터에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물들이 새롭기도 했지만 내년 5월까지 다 될까하는 불안감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 ‘싱아’는 무슨...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희미한 웃음이 스며 나와 슬그머니 웃어 버렸더니 아내와 아들 녀석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그런다. “비가 오니 이상해 진거 아니냐고.”

태풍도 가고 하늘도 쉬는 듯한 모습을 멀거니 원장실 창문 밖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물려올 더위가 벌써 걱정되니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 이게 이러면 또 저게 그래서 그렇고…….



김정웅 스마일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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