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도의 새벽 바다. 섬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오고 세상은 밝아온다.(사진=김종호 기자)
▲금오도의 새벽 바다. 섬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오고 세상은 밝아온다.(사진=김종호 기자)

이른 아침, 허리 구부러진 어르신들이 곱디고운 옷차림으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22일 오전 7시 30분. 여수 금오도 여객선 터미널. 조용하던 대합실이 갑자기 왁자지껄하게 변한다.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정겨움이 묻어난다.

어르신 한 분이 툭내뱉는다. “어디 여수, 나가요?” “예. 무시(무) 팔러 나갑니다. 여수 갑니까?”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오려고, 근디 우리 집 무시는 아직 멀었는데 뭐, 그리 빨리 컸다요. 빨리 심었는갑다” “예, 키가 많이 커서 팔라고요. 아니요. 똑같이 심었지라. 근디, 무시도 정성 들여 보살펴야지 처박아 놓으면 안 커요”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꽃이 필 무렵 인심 좋아 보이는 대합실 매점 사장님이 따뜻한 유자차를 내민다. 호로록 호로록 유자차를 넘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찬 바람이 물러간다. 

이렇게 섬사람들의 아침은 시작된다. 건너편 방파제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낚싯대를 던지는 중년의 부부가 보인다. 던졌다 되감기를 반복해보지만 눈치 빠른 삼치가 좀처럼 미끼에 걸리지 않는지 힘겨운 표정이다. 남편 옆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부인 모습이 여간 애를 태우는 모습이 아니다.

▲어르신들이 배들 기다리며 정다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nbsp;<br>
▲어르신들이 배들 기다리며 정다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시각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이른 아침 방문객들을 실은 여객선이 하얀 거품을 물고 섬을 향해 속도를 높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정현종. 시-방문객 중에서>

이렇게 방문객을 태운 여객선이 도착하자 이들을 기다리던 버스가 이내 출발한다. 방문객들은 섬의 곳곳의 안식처를 찾아다닐 것이다.

뭍에서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 받기 위해, 뭍에서 못다 한 사랑의 불꽃을 태우기 위해 섬을 찾은 그들. 하지만 섬은 상관없이 조용하고 따스함으로 품는다.

“외롭게 앉은 섬들/ 제각기 떨어져/ 울음 삼킨 듯 보이나/ 바다 밑으로/ 굳게 손잡고 있는 일들이/ 다만 저들만의 비밀도 아니다/ 헤어진 척하고 살 뿐이다/ 햇살 아래 섬의 표정은/ 비를 맞고 앉아 있을 때 얼굴과는 딴판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에 대한 희망이/ 약속의 땅으로/ 바다 밑에 잠겨 있음을/ 새벽바다/ 섬들의 소곤거림을 듣고서야 알았다"<김기정 시-손잡은 섬 중에서>

 

▲여객선이 섬에서 멀저진다. 섬도 조금씩 작아진다.&nbsp;
▲여객선이 섬에서 멀저진다. 섬도 조금씩 작아진다. 

대합실에 앉았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접혔던 허리를 펴고 뭍으로 나간다. 누가 뭐라 하지 않지만 어린아이들처럼 줄줄이 차례대로 발걸음을 움직인다. 손을 꼭 잡은 채 서로를 의지하고 한 발짝 두 발짝 걸음을 뗀다. 그 뒷모습에 무언가가 ‘쿡’ 찌른다.

 교동 시장에 무 팔러 가는 나이 지긋한 섬사람도 무를 가득 채운 화물차 운전석에 올라선다. 그의 얼굴엔 근심과 기대감이 교차한다. 외로운 섬처럼 육지와 떨어져 삶을 꾸리는 이들에겐 하루가 희망이다.

”섬에서 ‘적당히’는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섬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에“ <손세실리아 시 중에서>

희망을 가득 채운 여객선은 섬을 두고 다시 뭍으로 향한다. 2층 선실에서는 어르신들이  못다한 이야기를 옹기종기 앉아 꽃 피우고 있다. 그 옆에서 정겨운 웃음으로 조용히 들어주는 여객선 직원의 배려심 깊은 마음이 전해온다.

여객선은 점점 섬에서 멀어진다. 섬도 조금씩 작아지다 어느새 작은 점으로 변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하자 여객선은 뭍에 다다름을 알린다. 이제 하나둘씩 다시 일어난다. 섬사람들이 평생을 외로운 섬에서 뭍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 때문이다. 섬과 섬이 물밑에서 손잡고 있듯이 섬사람들도 서로의 손을 잡고 평생을 의지하고 섬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금오도’는 우리 마음의 섬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

김종호 기자 newstop21@dbltv.com

▲금오도의 일출. 섬은 우리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사진=김종호 기자)
▲금오도의 일출. 섬은 우리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사진=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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