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과 상생의 지도자를 기다리며

최경언 여수MBC 편성제작팀 부국장

 

광양만권은 탄탄한 산업 입지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기본이 탄탄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를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본의 응용, 기회의 활용, 재 창조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통합과 상생의 리더쉽 부재 때문이다.

오늘날 광양만권은 정부주도와 민간기업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본다. 지역스스로의 힘 보다는 외부 힘이 상당부분 작용해 왔다.

즉 기본의 창조가 지역민들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부 주도와 외부 자본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다. 물론 비약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지역경제의 큰 축의 근원을 냉철히 들여다 보면 지역 스스로의 힘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다. 물론 지역민들의 희생, 즉 토지와 노동력 제공, 환경과 보건안전의 위협 등의 산물도 있다.

하지만 지역산단의 태동을 보자. 1970년대 조성되기 시작한 여수산단의 모태는 GS칼텍스 호남정유다.

경상도 허씨와 구씨 집안 사람들이 정유공장과 석유화학 산단의 적지로 보면서 투자에 나선 것이 오늘날 글로벌 산단이 되었다.

물론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와 공업입국의 정책적 지원이 따랐지만 투자의 주체는 지역민은 아니었다.

이 여수산단은 오늘날 광양만권 경제를 리드하고 있다. 2010년 매출은 무려 72조원에 달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비롯한 광양산단은 어떤가? 광양산단의 모태, 포스코 광양제철소 역시 영남 출신 박태준 회장의 안목과 뚝심의 산물이다.

박태준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산반도 입주 권유를 뿌리치고 제철소 적지로 광양만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대통령을 설득해 90년 대 초부터 제철소 건설에 나섰다.

일관제철소에서 출발해 오늘날 후판공장 설립과 독자적 기술개발로 광양만권의 으뜸 경제축이 되었다.

2010년 광양제철소는 매출 15조 3천여 억원, 여기에 연관산업단지를 형성하면서 모두 17조원의 매출 실적을 기록했다.

컨테이너부두 역시 정부 주도의 광양항 컨 부두는 물류의 원활한 이동과 부산항을 대체하기 위한 안보상의 항만으로 85년 입지가 확정되고, 97년 1단계 4선석이 개항했다.

부산과 광양항을 중점 육성한다는 투포트 시스템 (양항체계)으로 출발한 광양항은 이제야 겨우 연간 2백만티이유를 처리하게 됐다. 당초 기대치보다 5년여나 늦은 상태다.

2010년 말에는 급기야 인천항에 국내 2위 항만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컨부두공단은 1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지방항만공사로 전환했다.

2011년 물동량 증가 추세는 주춤하고 있다. 운영사 1군데도 철수했고 크레인은 10대나 멈춰섰다. 복합물류항만으로 위상도 격하됐다.

아무리 정부가 육성한다는 양항체계지만 시장은 광양항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광양항은 주변의 연담도시 간 기능(도시간 협력과 부가가치 창출)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면서 로칼화물 창출이 빈약한 실정이다.

또한 컨벤션과 선화주, 종사자들의 편의를 위한 정보 인프라, 생활편의 서비스 부족으로 광양항은 투포트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위안이라면 경제자유구역이다.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은 그나마 지역민의 노력과 정부의 합작품이다.

광양만권이 산업과 물류 항만 등 입지를 갖춘 잇점을 활용해 우선 여수상의와 순천광양 상의, 전남발전연구원, 전남대등 일부 대학교수 등이 중심이 돼 자유무역지대 설치 등 규제완화와 투자가 용이한 지역으로의 변화를 모색했다.

이런 주장과 요구는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국토정책의 무게가 균형이라는 데로 다소 중심이 옮겨가면서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정책대안이 나온다.

참여정부 출범과 더불어 인천, 부산 김해, 광양만권을 동북아 물류중심 센터로 육성하고 각종 제도개선을 통해 고부가가치 물류기업을 적극 유치하는 정책대안으로 태동되었다.

이른바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이란 명칭으로 여수·순천·광양시와 경남 하동군 일원이 포함되었다.

광양항의 성공 잠재력을 활용하여 해외 유수물류기업을 유치하고, 제3국 수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기존의 석유화학·제철산업을 활용하여 전후방 연관산업을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나아가 다도해경관을 이용한 관광 및 휴양시설을 유치함으로써 동북아 경제중심 실현을 위한 거점지역으로 육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도 희망과 실망이 교차한다. 동북아 물류중심센터의 기능은 부산항에 내주고 말았다.

투자유치의 경우 나름대로 성과를 얻어 2011년 상반기 현재 율촌 1산업단지 9.2km2에 1차 금속, 조립금속 ,기계장비, 조선, 전기업 등의 업체들이 대부분 입주했다.

화양지구는 레저 단지로 착실히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시너지를 창출하는 리딩 기업이 없다.

여기에는 지역자치단체의 지원 부족과 행정구역 경계를 둘러싼 갈등으로 입주업체들의 피로를 가중시킨 데 원인이 있다. 이미 진출한 기업들이 그 지역을 마케팅하는 역할이 중요한 데, 이런 갈등 양상은 그들에게 역 마케팅을 하게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방자치제 시작과 통합 후유증을 겪으면서 지역의 상생 리더쉽은 사라졌다.

95년 순천, 광양, 98년 여수의 도동통합 이후 3개 지역은 통합 후 지역 주민들의 실질적 통합에 주력한 데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을 구실로 민선시장들은 지역 간의 경쟁이나 지역 내부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명분과 함께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만 전력했다.

그 사이에 광양만권은 정부주도와 민간기업 주도로 경제력을 키웠다. ‘지역차별, 호남차별’이다, 하는 지역여론도 있었지만 광양만권 지역 사회 주도의 지역발전을 견인하지 못했다.

더욱이 2009년 도시통합 실패와 2010년 지방선거 후에는 광양만권자치단체들은 거대한 국제행사가 눈앞에 있는 데도 상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더더욱 대화마저 단절되고 말았다.

오늘 날의 광양만권이라는 큰 밑그림을 그릴 때를 생각해본다. 순천광양 상공회의소나 광양상공회의소가 태동하기 전, 민선시대 이전에, 여수상공회의소가 광양만권의 개념을 도입하고 환형의 발전 비전을 제시할 때가 말이다.

적어도 그때는 광양만권의 큰 그림은 통합적으로 그려냈던 것이다. 이제 광양만권이라는 말은 상생도 없고 대화도 없는 경제적 함의를 담은 데 지나지 않았다.

지역의 건강한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은 통합과 상생의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를 발굴하는 것이 시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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