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낭도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 천연기념물 제434호
공룡 발자국 화석 ‘사도 755점, 추도 1759점, 낭도 962점, 목도 50점, 적금도 20점’
화개면과 옥정면을 합해 ‘화정면’으로 통합

전남 여수시는 3여통합 이후 26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지역민의 삶의 터전과 흔적, 변화에 따른 도시 형태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여수의 과거와 현재의 자취를 따라 미래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여수시문화원은 지난 2021년 1월 ‘여수시 마을유래지’를 발간했다. 이를 토대로 27개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여수와 고흥 사이 4개의 섬을 연결하는 여수섬섬길. (사진=여수시청 제공)
▲여수와 고흥 사이 4개의 섬을 연결하는 여수섬섬길. (사진=여수시청 제공)

㉕화정면

화정면은 신생대 제4기 홍적세의 마지막 빙하기였던 ‘뷔름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의 상승 및 오랜 침강과 융기 작용의 결과,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과 다도해가 형성됐다. 화정면은 사람이 사는 섬 15개와 무인도 56개로 구성돼 면적 26.19㎢, 해안선 156.4㎞에 이른다.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는 다리로 연결되는 길에 ‘백리섬섬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백야대교는 여수와 고흥을 잇는 다리로 11개의 연륙·연도교 사업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연륙교이다. 화양면 안포리 힛도 마을에서 화정면 백야도를 연결하며 2005년 준공됐다. 화양면과 조발도 사이의 조발대교, 조발도와 낭도를 잇는 낭도대교, 낭도와 적금도를 잇는 적금대교는 2020년 개통됐다.

화정면에 속한 섬 가운데 백야도·제도·개도·월호도는 고돌산반도로부터 뻗어 내린 봉화산 산줄기에서 비롯됐다. 여자도는 보성군 장도에서 뻗어내려 여자만 중심이 됐다. 화양면 서남쪽 끝인 공진곶에서 뻗어 내린 조발도·둔병도·적금도·낭도·사도·추도 등이 섬이 이어졌다.

▲1872년 지방지도 순천 고돌산진지도에 나타난 화정면의 섬
▲1872년 지방지도 순천 고돌산진지도에 나타난 화정면의 섬

백야도 북쪽에는 상화도와 하화도, 주변에는 가 있고, 주변에는 상·하계도와 장군도가 있다. 또 상화도와 하화도 사이에 일곱 개의 씨 스텍이 있는데, 밀물 때에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지만, 썰물 때에는 드러난다. 자봉도는 지리상 돌산도에서 송도를 이어 다시 나누어진 섬이다.

‘여수 낭도리 공룡발자국 화석지 및 퇴적층’은 2003년 2월 4일 천연기념물 제434호로 지정됐다. 이 화석지는 여수시 화정면에 속하는 사도·추도·낭도·목도·적금도 5개 섬의 백악기 퇴적층에 넓게 분포됐다.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모두 3546점으로 사도 755점, 추도 1759점, 낭도 962점, 목도 50점, 적금도에서 20점이 발견됐다.

종류도 앞발을 들고 뒷발만으로 걷는 조각류, 육식 공룡인 수각류, 목이 긴 초식 공룡인 용각류 등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이 중 조각류 발자국이 전체의 81%에 달할 정도로 많이 나타났다. 한편 이어진 발자국들 즉 보행렬의 화석이 나왔다. 길이 84m의 화석이 발견됐다. 공룡 화석 이외에도 규화목, 식물과 연체동물 화석, 개형충, 무척추 동물, 생흔 화석과 연흔, 건열 등 교과서적인 퇴적 구조들이 많이 발견됐다.

이 지역 공룡 화석지는 여수 일대 도서 지역이 세계적 규모의 공룡 집단 서식지로서 조각류·용각류·수각류 등 다양하고 완전한 종류의 발자국 화석과 84m의 국내 및 세계에서 가장 긴 공룡 발자국 보행렬이 확인돼 학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 기존 공룡 화석지와는 다르게 내륙 및 해안 지역이 아닌 5개의 가까운 섬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매우 특징적이다.

▲추도해변, 추도와 사도와 낭도 일대에는 모두 3800여 점의 공룡발자국이 있다. 이중 추도에 1700여 점의 공룡발자국이 있다.
▲추도해변, 추도와 사도와 낭도 일대에는 모두 3800여 점의 공룡발자국이 있다. 이중 추도에 1700여 점의 공룡발자국이 있다.

주로 발자국 화석이 남는 지역은 과거 호수나 바다의 가장자리였던 곳으로 공룡이 이곳을 걸어갔을 때는 지금처럼 단단한 바위가 아닌 부드러운 퇴적물이어서 위를 걸어갈 때 흔적이 남게 됐다. 이 퇴적물이 공룡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퇴적암으로 남으면서 공룡의 발자국도 남을 수 있었다.

화정면의 개도 봉화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개도사람길’, 백야도 백호산, 남도 상산 등 등산로 생태 탐방로가 만들어졌다. 백야도에서 가장 높은 백호산은 예전에는 옥정산으로 불렸다, 산에 대해 1899년 당시 돌산 군수였던 서병수가 편찬한 『여산지』에 따르면 “옥정산은 백하봉 또는 백야봉이라 불린다. 흰돌로 깍아 세운 것 같아 보면 먹구름 속에 가려진 건물 가고, 가서 보면 옥과 같이 물이 맑다.”고 기록됐다.

사도는 나끝·연목·추도·사도·중도·간뎃섬·증도시루섬·장사도긴뎃섬의 7개 섬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해안 지형을 지니고 있다. 간뎃섬을 지나 시루섬으로 가는 길은 고운 모래가 육계사주를 만들어 노둣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래들은 암석이 부서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개껍질이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의해 곱게 갈린 것으로 맨발로 걸으면 감촉이 아주 좋다.

▲여수 화정면 낭도리 시루섬을 오르면 마치 사람의 옆 얼굴을 닮았다고 붙혀진 얼굴바위가 있다. (사진=여수시)
▲여수 화정면 낭도리 시루섬을 오르면 마치 사람의 옆 얼굴을 닮았다고 붙혀진 얼굴바위가 있다. (사진=여수시)

시루섬을 오르면 거북이 모양을 닮은 ‘거북바위’가 나타난다. 임진왜란 전 이순신 장군이 멍석바위에서 쉬면서 이 바위를 보고 거북선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그밖에 얼굴바위, 장군바위, 멍석바위, 고래바위 등 시루섬은 그 자체가 자연이 만들어 준 조각 전시장으로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도록 각 바위에는 간략한 설명과 바라보는 방향을 표시해 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시루섬 남쪽 바닷가에는 규화목 화석이 있다. 과거 지질 시대에 자라던 목본 식물이 암석화한 것이다. 목재 화석은 암석화 과정에서 식물 조직과 유기물이 보존되며 식물 부위의 크기와 형태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 식물과 그 식물이 자라던 환경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사도 시루섬에 용꼬리를 닮은 용미암 (사진=여수시)
▲사도 시루섬에 용꼬리를 닮은 용미암 (사진=여수시)

시루섬 남쪽에 ‘용미암’이 있다. 모양이 용꼬리 같이 생겨 용미암으로 부른다. 사람들은 제주도의 용두암과 사도의 용미암을 연결시켜 한 마리의 용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용미암의 암맥은 바닷가를 따라 노출된 지층을 가로질러 분포하며 앞의 절벽에 보이는 지층들을 거의 수직으로 자르고 있다. 바닷가의 암맥을 따라가 보면 지층을 자르는 면이 반듯하지 않아 몇 차례 방향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진댓섬은 뱀처럼 길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시루섬에서 진댓섬으로 가는 길은 물때에 따라 하루 두 번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해준다. 잘 발달된 해식애와 암맥, 폭 200m, 높이 40m에 달하는 타포니 등이 있어 해안 지형을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개도~제도~백야도~상·하화도~사도~낭도를 거쳐 고흥까지 연결하는 바다를 ‘봇돌바다’라고 한다. 바다 가운데 우뚝 선 섬이 낚시할 때 쓰는 추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봇돌바다는 고흥에 가깝지만 화정면 주민들의 생활터전으로 수심이 30m 이상 되는 곳도 있다. 삼치·멸치·보구치(조기)·갈치·준치 등의 어획이 많고 연안에는 미역·톳·김·가사리와 같은 많은 해조류가 생산된다.

봇돌바다 가운데 있는 사도나 개도는 조선 후기 고돌산진에 속했고 지금의 고흥인 흥양현과 경계면서도 중요한 길목이었다. 제주도로 표류한 일본인들을 대마도로 보내기 위해 동래부(東萊府)로 보낼 때 꼭 거치던 곳이다.

1789년 작성된 『호구총수』에는 여수면 하도에 다리도와 개도가 포함되어 있다. 소라포면 상도, 백야도·절리도·절리도·대화도·소화도·사도·낭도·두음방도·조발도가 속해 있어 조선 후기 화정면의 섬들은 여수면과 소라포면에 딸린 마을이었다. 1896년 돌산군이 만들어지면서 포함된 면 가운데 개도를 중심으로 화개면과 백야도를 면소재지로 삼은 옥정면이 있었다. 1914년 3월 1일 돌산군이 여수군으로 통합되면서 화개면과 옥정면도 합쳐져 ‘화정면’이 됐다.

『여산지』에 “화개면은 개도가 돌산군 서남쪽에 있는 큰 섬으로 화개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1개의 섬과 2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었고, 옥정면은 군 서쪽의 큰 섬인 백야도에 옥정산이 있어 나온 이름인데, 16개의 섬과 5개의 작은 섬이 있다”고 기록했다.

● 선사 시대

1992년 국립 광주박물관에서 화정면 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한 뒤 『돌산 세구지 유적』에 보고 했다. 월호도에서 3곳의 조개더미가 확인됐다. 월호도 ‘가’ 유적은 비자금 마을의 북동쪽 구릉이 바다로 나가면서 형성된 만에 위치한다. 유적에서는 덧무늬 토기·눌러찍은무늬 토기·점줄무늬 토기·무늬없는 토기 조각과 돌끌이 발견됐다. 토기 조각 중 특징적인 것은 점줄무늬 토기이다.

월호도 ‘다’ 유적은 밀징포 마을 바닷가에 위치한다. 발견된 유물로는 눌러 찍은 무늬 토기·가는선무늬 토기·점줄무늬 토기·구멍띠무늬 토기 조각과 찍개, 숫돌 등이다. 개도 ‘나’ 유적지에서는 덧무늬 토기·눌러찍은 무늬 토기·가는선무늬 토기·무늬없는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됐다. 눌러찍은무늬 토기 조각은 안과 바깥면 모두 검은색을 띠며 굵은 모래와 장석이 많이 섞인 진흙을 바탕흙으로 사용해 비교적 단단하게 구워졌다. 또 이 유적에서는 찍개·돌칼날·숫돌·갈돌 및 갈판 등도 함께 발견됐다. 돌칼날은 몸돌에서 떼낸 격지에 간단한 손질을 가해서 만든 연모이다.

▲호남도서지도 중 순천지도 편집. (사진=여수시)
▲호남도서지도 중 순천지도 편집. (사진=여수시)

● 조선 시대

백야도의 백호산은 험한 산세와 육지와 가까운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사냥터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백야도는 말을 기르던 목장으로 활용되었는데 이에 관한 자료는 1633년 사복시 제조였던 허목이 제작한 『목장도』에 순천부 목장 가운데 백야도 목장이 기록돼 제리도와 개도에 사복둔이 있어 말을 기르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 1759년 간행된 『여지도서』 전라도 순천 목장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백야도 목장은 둘레가 20리로 24마리의 말을 기르고 있으며, 곡초는 3000뭇이다.”고 기록됐다. 백야도에서는 주로 나라에 바칠 말을 기르던 목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때 이 섬에는 달 대신 소를 기른 목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낭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정암회가 일본에 표류한 뒤 표류민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으며 돌아온 과정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 근현대 사회

적금도를 비롯한 화정면에 속한 섬들은 동학 농민 혁명이 끝나고 의병활동으로 이어졌을 때, 의병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6·25 한국전쟁 당시 전선이 여수까지 남하하자 위기를 느낀 미군이 여자만 해상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민들에게 전투기에서 기관총을 쏘아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 있었다.

1950년 8월 7일 여자만의 장도와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원주도 사이에 있는 바다 위를 미군 비행기가 무차별 기총소사를 하였는데, 남면 횡간도 사건이 일어났던 날과 같다. 당시를 기억하는 여자도의 최종순씨는 “넘자 바다를 때리고, 남면으로 가서 피해가 컸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하여 횡간도 사건과 같은 날 일어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보성군 벌교읍에 속한 장도에서는 당시 40대 중반의 김계순씨와 박산수씨를 비롯해 20대의 김영희씨가 폭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박산수씨는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김영희씨는 평생을 불구로 살다가 사망했다. 고흥 원주도에서는 당시 2명이 사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기총소사에 놀란 여자도 주민들이 대피하였으며, 순천에서 피난 왔던 사람들이 타고 돌아가는 배에 사격하자 물로 뛰어들어 피해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전선이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 미군의 일방적인 사격으로 많은 민간인이 학살되었음에도 그동안 이 사건을 규명하고자 하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건설한 '화양-적금(3공구) 도로건설공사 둔병대교'가 제16회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도로·교통시설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여수시)
▲HDC현대산업개발이 건설한 '화양-적금(3공구) 도로건설공사 둔병대교'가 제16회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도로·교통시설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여수시)

● 삶과 변화

여수 도서 지역 순환 도로망을 구성하는 11개 해상교량이 계획됐다. 여수시 화양면과 고흥군 영남면을 연결하는 5개의 다리와 돌산에서 백야도를 잇는 6개의 교량 중 백야와 화태대교가 완공 돼 여수의 섬과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고 있다.

2028년 완공 예정인 화대~백야 구간 연결로 여수시 돌산읍부터 고흥군 영남면까지 11개의 다리가 모두 이어지면 다양한 모양의 교량과 보석 같은 섬이 어우러진 해양 관광 벨트가 구축된다. 현재 여수~고흥 간 5개의 다리에는 야간 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낭만의 여수 밤바다를 즐길 수 있다.

화양조발대교는 화양면 장수리에서 화정면 조발도를 잇는 다리로 여수에서 고흥으로 가는 첫 번째 대교이다. 170m 높이의 주탑 2개를 세워 교각과 교각 사이를 3개의 경간으로 잇고 있다. 가장 긴 경간은 500m인 콘크리트 사장교이다. 2개의 주탑을 세워 다이아몬드 모양인 이 다리는 길이 854m, 너비 11.5m로 섬으로 향하는 미래의 길을 열어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 가는 다리라는 ‘가연지교’를 주제로 만들어졌다.

둔병대교는 조발도와 둔병도를 잇는 연도교로 여자만의 섬과 조발도에 떠오르는 해의 모양을 담은 지역의 상징적 교량이다. 길이 990m, 폭 12.05m인 이 다리는 기존 곡선 주탑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해 2020년 ‘제16회 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토목 부분 최우수상을 받았다.

▲낭도대교(왼쪽)와 둔병대교 야경. (사진=김회재 의원실)
▲낭도대교(왼쪽)와 둔병대교 야경. (사진=김회재 의원실)

낭도대교는 둔병도와 낭도를 연결하는 연도교이다. 다리는 길이 640m, 폭 12.5m로 왕복 2차로로 다리와 다리 사이의 경간을 150m+170m+150m로 하여 배가 항해할 때 눈에 잘 띄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리듬감을 살려 운전자의 눈에서 아름다운 다도해 경관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개방감을 확보했다.

두 지점 간 수평으로 배치되어 외부 하중에 휨으로 저항하는 뼈대 구조를 빔이라고 한다. 그중 전체 구조에서 가장 무게를 많이 받는 빔을 거더라고 한다. 이러한 거더를 두 지점 사이에 주요 뼈대로 배치하고, 그 위에 차량 등이 지나갈 수 있게 바닥판을 배치한 교량을 거더교 라고 한다. 낭도대교는 콘크리트 박스 형태의 거더에 프리스트레스를 도입해‘ PSC 박스 거더교’라 한다.

적금대교는 낭도와 적금도를 잇는 무지개 모양 다리인 아치형 연도교로 다리의 길이는 470m, 폭 12.5m로 주변 경관과 다도해 섬들의 조화성을 고려하여 아름다운 ‘중로 아치고’로 만들어졌다. 아치교란 아치형 구조물에 다리의 상판을 지지하는 교량으로 상판의 위치에 따라 상·중·하로 아치교로 구분하는데 중로 아치교는 상판이 다리 중간에 있는 것을 말한다. 아치교는 보는 모습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다리 형식이며 고대 로마 시대 돌로 만들어진 수도교가 대표적이다.

팔영대교는 고흥군 영남면 우천리와 화정면 적금리를 잇는 교량으로 2016년 12월 27일 개통됐다. 여수와 고흥 사이를 잇는 연륙·연도교 사업의 11번째 마지막 다리로 고흥에서 진입하는 첫 번째 다리다. 육지인 고흥에서 섬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다리라는 관문성과 상징성을 고려하여 아름다움을 살리고자 138m의 주탑과 주탑 사이인 경간을 하나로 하고 케이블을 다리 양쪽 끝에서 잡아당기는 구조물인 ‘앵커리지’에 주 케이블을 고정하는 방식의 현수교로 만들어졌다.

다리의 길이는 1340m, 폭 13m로 교각과 교각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경간장의 길이는 850m로 설계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었다.

오지선 기자 newstop22@dbl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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