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 설립 논의가 필요하다]③ 문화예술인에 대한 복지와 지위‧권리 보장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로,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 방식의 방향 전환과 변화가 요구되고 있지만 여수시 문화행정은 준비가 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여수시 원도심 전경. (사진=뉴스탑전남)
여수시 원도심 전경. (사진=뉴스탑전남)

코로나 등으로 문화예술계 생활‧창작 여건 악화
미술 작품 NFT 거래 등 디지털화로 상황 급변
지역 문화예술인 활동 실태‧욕구 파악 조사 無
지속 가능하고 안정된 생태계 조성 노력 절실

여수에서 미술, 문학, 무용, 음악, 국악, 연극,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지, 창작 환경은 어떠한지에 대한 여수시의 실태조사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는 인구 감소 문제와도 직결된다.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살아갈 구조적인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청년작가일수록 큰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장기화하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문화예술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또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문화예술인들은 이런 고민을 할 겨를이 없다. 대유행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대유행이 아닐 때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물론 코로나19 이후 예술인들의 피해를 보상하고 돕는 방안들이 모색돼 왔고 실행에 옮겨졌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매일 같이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온갖 방안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문화예술인들은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전업 예술인들에게는 더더욱 가혹한 현실이다. 작품 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로 부업을 하거나 배우자의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수시 화정면 낭도에 조성된 갱번미술길. (사진=여수시)
여수시 화정면 낭도에 조성된 갱번미술길. (사진=여수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2월 31일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2020년 기준)’에 따르면 예술인 연 평균 수입은 755만 원으로 나타났다. 2017년 1281만 원보다 41%(526만 원) 적었다. 예술인의 86.6%는 월 평균 수입이 1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 확산 등에 따른 예술 활동 감소에 있었다. 또 예술 활동으로 받은 스트레스의 주된 요인으로 다른 분야 대비 낮은 보수, 예술 활동을 위한 시간 부족, 감정노동,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낮은 인식 등으로 나타났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해 8월 31일부터 12월 12일까지 도 예술인 4196명과 407개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예술인·예술단체 전수조사’를 했다. 도내 예술인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실질적인 정책 수요를 파악해 ‘경기도형 예술인 지원’ 정책 방향 수립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예술인들의 창작여건은 녹록하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예술 활동을 하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을 묻는 말에 30.6%가 ‘창작을 위한 최저 생계비용 부족’을 꼽았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다. ‘예술 지원금 부족’(21.4%), ‘예술 분야의 안정적 일자리 부족’(18.5%)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실태 전수조사가 없어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취재를 종합해보면 여수지역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장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실태조사 또한 전무한 상황이다.
 

여수민예총 회원들이 찾아가는 문화활동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다. (사진=여수민예총)
여수민예총 회원들이 찾아가는 문화활동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다. (사진=여수민예총)

이렇듯 인공지능, 스마트폰, 미술 작품의 NFT(대체불가토큰) 거래 등 상황은 급변하는데 문화예술계는 여전히 생활고와 창작여건과 싸우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고 외면하기에는 문화예술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결부돼 있고 알게 모르게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망으로서 공동체를 강화하고 개인을 넘어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치유, 회복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제는 문화예술은 선택이 아닌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 권리가 되고 있다. 그 기본 권리를 제공하는 자원이 문화예술이고 문화예술인들이다.

문화예술인 창작여건 개선이나 주거안정 문제, 긴급복지 지원, 예술인 창작 준비금 제도 등의 지속 가능하고 안정된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다.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 구조 변화 추세로
제도 현장 정착 위해선 탄탄한 준비 필요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돼 2012년 11월 18일부터 시행됐다. 예술인복지법은 국가 또는 지자체가 예술인의 복지증진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업으로 예술인의 생활안정 지원 등 취약예술계층의 복지 지원 사업도 명시하고 있다.
 

2020년 11월 앙상블여수 지역 예술영재 발굴 공연 자료.
2020년 11월 앙상블여수 지역 예술영재 발굴 공연 자료.

이 법에 따라 예술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창작자금을 지원받고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용보험(2020년 도입) 등은 불가능했고 예술 활동을 증빙해야만 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실적 등을 달성하지 못하면 예술인에서 제외되는 등 예술인으로 활동하면서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한다.

한국예술인복재단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전국의 예술활동증명 완료자 수는 누적 13만2000여 명이다. 여수는 210여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박동화 한국미술협회 여수지부장은 “예술인복지법이 문화예술인들에게 적잖은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며 “여수만의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인의 복지뿐만 아니라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도 마련됐다. 지난해 8월 국회를 통과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올해 9월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은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를 신장하며, 예술인의 지위를 보장하고 성평등한 예술 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위해 ▲예술인 권리침해 행위 및 성희롱·성폭력 행위의 금지 ▲예술인 권리구제기구의 설치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 방안 등을 규정하고 있다.
 

권오봉 시장이 지난해 5월 웅천 장도예울마루 창작스튜디오 2기 입주 작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시는 2023년까지 52억 원을 들여 웅천 장도 ‘예술의 숲’을 조성하고 있다. (사진=여수시)
권오봉 시장이 지난해 5월 웅천 장도예울마루 창작스튜디오 2기 입주 작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시는 2023년까지 52억 원을 들여 웅천 장도 ‘예술의 숲’을 조성하고 있다. (사진=여수시)

‘예술인복지법’,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 구조 흐름이 문화예술 사업 지원에서 예술인 지원으로 기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혜적 차원에서 펼치는 정책과 지원을 넘어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 확보와 인권·사회적 권리 보장이 당연시되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이 시민의 기본권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시설을 마구 지으란 얘기가 아니라 예를 들면 수천 수억씩 주고 유명한 공연을 부르는 것도 아주 가끔은 필요하지만 그 돈으로 지역 문화예술가들을 지원하고 그리고 이 예술 활동을 향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이라는 것이다.

경기도와 충남도, 경기 부천시 등은 실태조사는 물론 예술인 기본소득과 창작 수당 혹은 창작 지원금, 조례 제정 논의 등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경기도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도내 예술인에 대한 실태조사와 예술인 지킴이 제도 도입, 청년예술가 연 300만 원의 창작활동비 지원, 예술창작공간 9개소 설치 등 132억2000만 원을 투입한다. △불공정행위로부터의 예술인 보호 △예술 활동 여건 마련 △열악한 창작 공간 개선 등 3개 분야다.

불공정행위로 고통 받는 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예술인 지킴이 제도를 도입해 잘못된 계약서 작성이나 저작권 문제에 대한 예술인의 고충 상담, 신고, 소송, 분쟁조정 등을 담당할 노무·계약 전공자 2명을 고용했다. 도내 예술인 수와 소득, 취업상태, 생활수준 등 기초자료 수입을 위한 실태조사도 벌였다. 3년에 한 번 문체부에서 진행하는 예술인 실태조사만으로는 원활한 정책 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수시는 전라선 옛 철길공원 내 오림터널에 지역 예술인 작품을 설치했다. (사진=여수시)
여수시는 전라선 옛 철길공원 내 오림터널에 지역 예술인 작품을 설치했다. (사진=여수시)

부천문화재단은 2020년 부천지역 예술인 실태조사에 이어 지난해 부천지역 예술 활동 심층조사를 통해 경력 형성 단계에 따른 영향 요인과 필요 지원 등을 연구해 중장기 예술지원 정책 방향성 수립과 지원 사업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

또 내년부터 시행하는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고향세법)’을 대비할 필요도 있다. 고향세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지원 및 청소년의 육성‧보호 △지역 주민의 문화‧예술‧보건 등의 증진 △시민참여, 자원봉사 등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원 △그 밖에 주민의 복리 증진에 필요한 사업의 추진 등의 목적으로만 쓸 수 있는 재원이다. 문화예술계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를 전담할 기구의 필요성이 커진다.

제도가 지역 문화예술계 현장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탄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 방식의 방향 전환과 변화가 요구되고 있지만 여수시 문화행정은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마재일 기자 killout1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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